정부가 반도체 ‘포스트 슈퍼사이클’에 대비한 중장기 전략 마련에 착수했다. 10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최근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에 국내 반도체 산업 진단 연구용역을 맡겼다. 메모리 업황 점검과 함께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 경쟁력 강화 방안 등을 담아 10월까지 중장기 전략을 수립할 계획이다. 반도체 5월 수출액이 전년 대비 52.2% 급증하는 훈풍 속에서도 선제적으로 다운사이클을 대비하고 산업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우리 경제의 반도체 의존도가 극도로 높아진 상황에서 초호황 이후를 대비하는 행보는 바람직한 일이다.
올해 한국 경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성장률 전망치를 2.6%로 대폭 상향 조정하는 등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투자 호조에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성장의 상당 부분을 전체 수출의 20%를 웃도는 반도체에 의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반도체발(發) 성장의 온기가 민생경제와 다른 산업에 미치지 못하면서 K자형 양극화도 심화하고 있다. 한국의 글로벌 시스템반도체 점유율은 3%대에 불과하고 비메모리 역량은 정체 상태다. 언제 추격당할지 모를 메모리 초격차에만 기대서는 다가올 혹한기를 버텨낼 수 없다.
기업들도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혁신에 돌입했다. 삼성그룹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조직 DNA 대개조’ 주문에 따라 전사 업무에 ‘인공지능(AI) 대전환(AX)’을 선언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남·광주, 충청 지역에 대규모 신규 패키징 공장 설립도 검토 중이다. 문제는 기업의 의지를 뒷받침할 시스템과 인프라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날 일본 닛케이포럼 참석 뒤 기자들을 만나 “차기 공장 입지를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전력도 땅도 사람도 물도 모두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든 해외든 반도체 공장을 지을 기본 인프라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사상 최대 호황기인 지금이야말로 반도체 다운사이클에 대비하고 경쟁력을 강화할 골든타임이다. 정부는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에 나서야 한다. 투자를 가로막는 입지 규제를 혁파하고 반도체 인재 육성에도 속도를 가해야 한다. 아울러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의 최전선에서 뛰는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낡은 규제와 경직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