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달러 환율의 급등세에서 주목할 점은 다른 통화보다 원화값의 하락세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이다. 중동 전쟁 발발 이후 미국 달러 대비 주요국 통화가 전반적으로 약세지만 원화 가치 절하 폭이 압도적으로 크다. 중동산 에너지 의존도가 심한 경제구조에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 우려, 외국인 주식 매도, 엔화 약세까지 모든 악재가 한꺼번에 작용한 결과다. 당분간 원화 약세를 되돌릴 만한 재료가 보이지 않아 1560원 선까지 환율 상단이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5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미 달러화 대비 원화값은 이달 2일부터 3거래일 연속 올랐으며 하루 평균 11.6원씩 뛰었다. 이날에는 1529원에 개장한 뒤 오전 10시 27분께 1549.1원까지 올라 1550원에 근접했다. 이는 금융위기였던 2009년 3월 10일(장중 최고 1561.0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달러 실수요가 환율을 크게 끌어올리면서 외환 당국의 구두개입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창구에서 고객이 달러를 살 때 적용되는 환율은 더 올랐다. 우리은행 인천공항지점의 달러 현찰 매도율은 이날 1603원으로 고시됐다. 현찰 매도율은 고객이 은행에서 달러 현찰을 살 때 적용되는 환율이다. 금융위기 때나 보던 ‘1달러=1600원’이 등장한 것이다. 엔화 현찰 매도율도 1005원으로 1000원을 넘어섰다.
문제는 원화가 다른 국가 통화들보다 더 매도 타깃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 중동 전쟁 발발 직전인 2월 27일부터 6월 5일까지 원화 가치는 6.9% 하락했다. 같은 기간 일본 엔(-2.5%), 유로(-1.7%), 영국 파운드(-0.5%), 대만 달러(-0.4%)는 물론 인도 루피(-5.1%)보다 훨씬 하락 폭이 크다.
전문가들은 수급, 대외 환경 등 모든 측면에서 원화 약세 요인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최규호 하나투자증권 연구원은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에 취약한 경제구조, 인플레이션 우려에 따른 미국의 금리 인상 전망, 리밸런싱에 따른 외국인의 순매도 규모 확대까지 원화에 우호적인 환경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러한 변수들은 단기간에 해결되기 쉽지 않고 최근에는 대미 관세 우려까지 재점화하면서 당분간은 원·달러 환율이 1500~1560원 사이에서 등락을 거듭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환율이 하락하려면 결국 호르무즈해협 정상화를 통한 유가 안정, 외국인의 자금 유입이 선행돼야 하는데 쉽지 않다”며 “하반기에도 미국의 주요국 대상 관세 재부과가 예정돼 있고 대미투자특별법에 따른 한미전략투자공사 출범, 상대적으로 잠잠한 서학개미의 해외 투자 수요 급증 변수도 있어 원화가 상승 압력을 받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