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본투표 당일 서울 일부 투표소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투표하지 못했거나 장시간 대기한 유권자들과 보수 성향 지지자들이 투표함 반출을 막아서며 이튿날에도 대치가 이어졌고, 선거관리위원회를 향한 책임론은 선거무효 소송 등 법적 공방으로 번질 조짐이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가 관리 부실 탓에 통합의 계기가 되기는커녕 부정선거 음모론과 사회 분열을 키우는 도화선이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4일 오전 서울 송파구 우성아파트 경로당에 마련된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에는 주민과 보수 성향 지지자, 유튜버 등 350여 명이 몰렸다. 이들은 “재선거” “개표 중단” “선거무효” 등을 외치며 투표함 2개의 반출을 막았다. 해당 투표함에는 2000여 명의 투표지가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부터 이날 오전 5시까지 서울경찰청에 접수된 관련 112신고는 135건에 달했다.
사태는 3일 오후 서울 송파·강남·광진구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투표하지 못하거나 장시간 대기하면서 시작됐다. 투표함 반출을 막고 있는 이들은 선관위가 송파구 유권자 수의 절반 수준에 해당하는 투표용지만 준비한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사전투표율을 감안했더라도 최종 투표율이 61%를 넘긴 상황에서 본투표용지를 50% 수준만 준비한 것은 명백한 수요예측 실패라는 지적이다. 특히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강세를 보인 강남권에서 혼란이 집중되면서 보수 성향 지지자들의 의구심은 더 커졌다.
정치권은 선관위 책임론에는 한목소리를 냈지만 대응 방향을 놓고는 충돌했다. 국민의힘은 “서울의 투표 공정성이 깨졌다”며 개표 중단과 재선거를 요구했고 선거무효 소송 등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선관위의 부실 관리에는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도 국민의힘의 요구에 대해서는 “선거 불복”이라며 일축했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단순 행정 착오를 넘어 선거제도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선관위는 2022년 대선 당시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에 이어 지난해 조기 대선 사전투표소 관리 부실 논란까지 겪었다. 이번에는 본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선거 관리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
선거는 패자도 결과에 승복하게 만드는 절차적 신뢰가 핵심이다. 그러나 수도 서울의 수장을 뽑는 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일부 유권자의 투표권 행사가 차질을 빚으면서 “내 표가 제대로 반영됐는가”라는 의문이 확산하고 있다. 선관위의 관리 부실이 강성 지지층의 부정선거론에 명분을 제공했고 ‘윤 어게인’ 등 선거 불복 정서를 다시 자극하면서 선거가 통합이 아닌 진영 간 불신과 분열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법적 공방 또한 본격화하고 있다.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과 허철훈 사무총장, 서울시·송파구 선관위 관계자들을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국민의힘도 선거무효 소송 등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고의적인 부정선거나 직무유기보다는 안일한 수요예측에 따른 관리상 하자와 과실에 무게를 두고 있다. 선거무효 여부도 투표하지 못한 유권자 수가 당선자와 낙선자 간 표 차보다 많아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실제 선거무효나 재선거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선거 관리상 하자가 선거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선거무효 소송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사태가 진정될지는 미지수다. 선관위가 투표용지 산정과 현장 보고, 중앙 대응, 추가 인쇄·이송 절차의 책임 소재를 투명하게 밝히지 못한다면 이번 사태는 한 지역 투표소의 혼란을 넘어 선거 관리 시스템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