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7년여 만에 처음으로 1530원대에 개장하는 등 환율 상단이 거침없이 뚫리고 있다. 중동 긴장 고조와 미국 금리 인상 전망에 따른 강달러, 외국인 주식 매도, 엔화 약세 등 온갖 악재가 겹치면서 원화 가치 하락 압력이 커진 영향이다. 외환 당국 구두 개입 등으로 추가 상승은 제한됐지만 환율 밴드 상단이 추가로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4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3.3원 오른 1529.7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는 3월 31일(1530.1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환율은 13거래일째 1500원대에 머물러 있다. 이는 외환위기(1997년 12월 30일∼1998년 3월 13일) 이후 최장이다.
이날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보다 13.6원 오른 1530.0원에 개장한 뒤 장 초반 1530.8원까지 치솟았다. 환율이 1530원대에서 거래를 시작한 것은 금융위기 시절인 2009년 3월 이후 처음이다.
이후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과도한 쏠림에는 필요한 조치를 즉시 취할 것”이라고 밝히고 외환 당국의 스무딩오퍼레이션(미세 조정)의 영향으로 1520원 수준까지 내려갔지만 외국인의 대규모 국내 주식 매도가 이어지면서 환율은 다시 상승 폭을 키웠다. 외국인은 지난달 7일부터 19거래일 연속 국내 주식을 순매도했고 이날도 유가증권시장에서 7조 원에 육박하는 순매도를 기록했다.
중동 전쟁 재점화와 미국의 금리 인상 전망에 따른 달러 강세, 엔화 약세 등도 원화 가치 하락에 일조했다. 이달 중순 열리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인플레이션 우려에 따른 ‘매파적’ 기조가 확인될 것으로 보이면서 달러인덱스는 사흘 연속 상승해 99.5선을 넘었다. 여기에 원화와 동조화 경향을 보이는 엔화 가치가 달러당 160엔 선까지 떨어지면서 원화 값을 동반 끌어내리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 참가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심리 변화다. 이영화 BNK부산은행 이코노미스트는 “1510~1520원대에서는 기업들이 비교적 편하게 달러를 매도했지만 1530원 이상이 장기간 지속되면 시장 심리가 달라질 수 있다”며 “이번 주와 다음 주가 중요한 분수령”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대외 수급 악화가 환율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내국인 심리까지 흔들리기 시작하면 지난해 말과 같은 불안 심리가 재연될 수 있다”며 “그 경우 환율 상단을 예단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 말 외환보유액은 4269억 9000만 달러로 전월보다 8억 8000만 달러 줄어 한 달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국민연금과의 외환 스와프 거래 등 당국의 시장 안정화 조치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연금이 해외투자를 하려면 달러가 필요한데 시장에서 조달하지 않고 스와프 계약을 통해 한은에서 빌리면 외환보유액이 줄어드는 결과가 나타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