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무역과 물류는 특정 항로에 편중된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습니다. 대체항로인 북극항로의 거점항구를 확보하기 위해 러시아와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명예교수는 2일 서울 용산구의 한 호텔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인 북극항로의 실행전략을 이같이 제안했다. 김 교수는 “중동전쟁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단순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아닌 기존 해상 물류 통로인 남중국해, 믈라카 해협, 수에즈 운하를 모두 포괄하는 북극항로 개설”이라며 “미국의 중국 견제, 일본의 러시아와의 영토 분쟁 등으로 인해 주변국과의 경쟁에서 우리나라가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언급했다. 김 교수는 1979년 ‘제2차 오일쇼크’ 이후 석유에너지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미국 콜로라도 스쿨 오브 마인스(CSM) 자원경제학과에 지원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서울대 자원공학과에서 에너지정책을 강의하며 셰일 혁명을 예측했고 산업공학과로 자리를 옮겨 국가발전원리를 연구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초대 대통령정보과학기술수석보좌관을 지냈고, 2010년 초부터는 북극항로에 주목해 강연·출판 등을 통해 그 중요성을 알려왔다.
북극항로는 북극해를 통과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해상 항로로 러시아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지나야 한다. 러시아와의 관계가 중요한 만큼 러-우 전쟁 이후를 내다보며 선제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러-우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는 막대한 전쟁 비용으로 재정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국에 유리한 협력 기회가 열릴 것이며, 그 기회는 종전 이후 1~2년 정도밖에 안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북극항로 거점항구의 효과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김 교수는 “북극항로는 물류 이동 거리 단축뿐 아니라 글로벌 물류 재편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북극항로 거점항구를 확보하면 부산·울산·경남(부울경) 지역에 싱가포르 같은 경제도시를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항로는 선점해도 경쟁에 노출되지만, 거점항구는 한 번 유치하고 나면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며 “미국의 대중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러시아의 동진이 북극항로의 개통과 절묘하게 일치하는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맞이하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거점항구를 확보하기 위해 범부처 기능을 아우르는 컨트럴타워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안도 내놓았다. 김 교수는 “박정희 정부 시절엔 청와대 경제2수석실이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을 추진하는 컨트럴타워 역할을 했다”며 “거점항구는 선박 연료 벙커링부터 생산과 환적, 인공지능(AI)을 통한 스마트 항만 및 통상까지 여러 분야가 뒤얽혀 있다.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를 비롯해 외교부, 산업통상부, 재정경제부가 원팀으로 힘을 합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4~5개 이상의 부처가 연계된 만큼 청와대에서 이를 총괄할 컨트럴타워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북극항로 개설이 예상보다 빨라질 것이란 전망도 했다. 기후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 등으로 북극의 해빙이 녹아 북극을 통한 항해가 가능한 시점을 2030년 이후로 예측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와 관련 “지난해 중국 컨테이너선이 쇄빙선 없이 단독으로 출항 20일 만에 북극항로를 통과해 영국에 도착했다”며 “올해 중국이 북극해 정기항로 개설을 준비 중인데 이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북극항로가 열린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선박기술 발전으로 유빙이나 항법시스템의 불안정 등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중동전쟁이 미·중 패권 전쟁에서 미국의 우위를 가져올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시했다. 그는 “중동국가의 전쟁 복구 비용이 원유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며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컸던 미국의 셰일가스 산업이 에너지 분야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란의 석유 시설 공격 등 중동의 석유 물량도 축소되면서 미국의 ‘오일 패권’이 더욱 강해지는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