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두 달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글로벌 달러가 약세를 보였음에도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서 원화가 주요 통화 가운데 나홀로 약세를 나타냈다.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가운데서도 환율은 1516원대로 올라서는 이례적 흐름이 이어졌다.
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1원 오른 1516.4원에 주간 거래를 마감했다. 주간 거래 종가 기준으로 지난 4월 2일(1519.7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장중에는 1520원선까지 상승하며 당국 경계선에 바짝 다가서기도 했다.
이날 환율 상승은 글로벌 달러 흐름과는 다소 엇갈렸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는 장중 하락세를 보였고 유로화와 파운드화 등 주요 통화는 강세를 나타냈다. 하지만 원화는 달러 약세 흐름에 동참하지 못했다.
위재현 교보증권 연구원은 “현재 글로벌 달러는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원·달러 환율은 1520원 부근까지 오르는 등 원화 자체의 약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며 “외국인 주식 수급이 환율 상승의 핵심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8조 1081억 원을 순매도했다. 반면 개인은 8조 2341억 원을 순매수하며 물량을 받아냈다. 코스피는 개인 매수세에 힘입어 전 거래일보다 0.15% 오른 8801.49로 마감하며 3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장중에는 8933.62까지 오르며 9000선에 근접했다.
시장에서는 최근 환율이 채권시장보다 주식시장 수급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외국인의 국내 채권 투자 자금은 상당 부분 환헤지가 수반되지만 주식 투자 자금은 환헤지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외환시장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위 연구원은 “채권시장의 규모가 더 크지만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주식 자금이 훨씬 직접적”이라며 “최근 하루 단위 자금 흐름만 놓고 보면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가는 자금 규모가 압도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원화와 대만달러의 동조화가 다시 강화되는 점도 눈길을 끈다. 한국과 대만은 반도체 중심 수출 구조를 갖고 있고 미국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의 대표적 수혜국으로 꼽힌다. 두 나라 모두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크고 외국인 투자 비중도 높아 글로벌 자금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일각에서는 외국인 비중이 높은 국내 증시 구조가 환율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국인들은 국가별 투자 비중을 일정 수준으로 관리하는데 주가 상승으로 한국 비중이 커질 경우 차익 실현성 매도가 기계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 연구원은 “현재는 개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형주 매물을 적극 받아내면서 지수가 버티고 있다”며 “하지만 환율 측면에서는 외국인 자금 유출이 원화 약세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외환당국의 경계감이 환율 상단을 제한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외국인 수급 불안이 진정되지 않는 한 원화 강세로 방향을 틀 계기는 마땅치 않다는 평가다.
위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 1520~1530원 구간에서는 당국의 방어 의지가 상당히 강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외국인 매도세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당장 환율이 큰 폭으로 하락할 재료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