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파마들이 ‘중국 다음은 한국’이라며 국내 신약 개발 기업들을 눈여겨보고 있으나 임상 2상 단계에 있는 물질이 극소수라 아쉬워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임상 진입 전 초기 물질도 기술 수출은 가능하지만 헐값일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 바이오텍의 한 대표는 한국 신약 개발 산업의 현주소를 이같이 진단했다. 중국 이노벤트바이오로직스가 지난달 29일 화이자와 최대 105억 달러(약 16조 원)에 달하는 항암 신약 공동 개발 계약을 발표한 상황에서 곱씹어볼 만한 말이다. 선급금만 6억 5000만 달러(약 1조 원)에 달하는 초대형 계약이다. 중국 헝루이제약이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과 최대 152억 달러(약 23조 원) 규모의 신약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중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초대형 글로벌 계약이 잇따르고 있다. 반면 올 들어 1일 현재까지 국내 기업의 기술 수출 규모는 약 11조 원으로 초라하다.
한국과 중국 신약 개발 산업의 차이를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뭘까. 많은 전문가들이 중국의 2015년 ‘의약품·의료기기 심사 승인제도 개혁’을 지목한다. 그중에서도 ‘임상시험계획(IND) 60일 묵시 승인’ 제도를 중요하게 꼽는 이들이 많다. 중국에서는 기업이 IND 신청 이후 60일 이내 승인 여부를 통지받지 못하면 IND가 승인된 것으로 간주해 임상을 시작할 수 있다. 이에 중국 신약 개발 기업들은 빠르게 임상에 진입하고 빅파마들이 요구하는 인체 임상 데이터를 확보해 수많은 기술 수출 실적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축적된 신약 개발 경험과 글로벌 시장의 신뢰는 최근의 대규모 공동 개발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최근 의료 제품 허가·심사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심사 인력을 대폭 늘려 신약 등 품목 허가·심사에 걸리는 기간을 주요국 중 최단 수준인 240일 내로 단축하겠다는 목표는 고무적이다. 하지만 신약 개발 업계에서 호소하는 임상 승인 규제 완화 내용은 이번 발표에서 빠져 있었다. 최근 미국 의회에서 중국 바이오 기업에 대한 투자를 규제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이 대안으로 부상할 수 있을지가 업계에서 초미의 관심사다. 때마침 찾아온 임상 규제 개혁의 적기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