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내에서 “삼성전자 5억 원 사내 주택대출 제도를 벤치마킹해달라”는 요구가 나오면서 주택금융도 K자 양극화의 길을 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도권·규제지역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2억~6억 원으로 묶여 있는 상황에서 초저금리에 돈을 빌릴 수 있는 직장인들과 그렇지 않은 서민들의 자산 격차가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2일 금융계에 따르면 전날 기준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은행의 5년 고정형 주택담보대출 금리 밴드는 연 4.32~7.31%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6.23%)과 비교해 주담대 금리 상단이 1.08%포인트나 상승했다. 올해 하반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나설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주담대 금리가 8%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대기업 임직원들은 이 같은 부담에서 한발 비껴나 있다. 삼성전자가 올해 임금 협상 과정에서 최대 5억 원까지 연 1.5% 금리로 빌릴 수 있는 사내 대출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자 다른 기업에서도 유사한 제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다.
SK하이닉스 노조 측도 주택 대출 한도를 5억 원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연 1.5% 금리로 1억 원까지 대출을 내주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두나무가 최대 5억 원까지 무이자로 주택 자금을 빌려주는 제도를 시행 중이고 빗썸도 1억 원 한도의 대출이 가능하다.
사내 대출은 민간 기업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금융위원회 산하의 한국산업은행·IBK기업은행·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예금보험공사·신용보증기금 등 공공기관들도 주택구입자금이나 생활안정자금 명목으로 사내 대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캠코는 직원들에게 최대 1억 6000만 원을 3.3% 금리로 빌려주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런 흐름이 자금 조달 측면에서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한다. 사내근로복지기금이나 회사 자체 재원으로 운영되는 사내 대출은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대상이 아니다. 일반적인 차주들이 시중은행이나 상호금융권에서 주담대를 받을 경우 가계대출 총량,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받지만 사내 대출은 이런 규제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내 대출 제도가 있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직원들은 시중금리의 3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에서 별다른 한도 규제 없이 추가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한 자금 조달 능력의 차이가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뿐 아니라 자산 격차의 확대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억대 연봉을 받는 대기업과 금융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이미 금융권에서 우량 차주들로 분류된다. 제도권 금융에 더해 사내 대출로 수억 원 규모의 자금을 추가로 확보할 경우 고가 아파트으로의 접근이 한층 쉬워진다.
삼성전자는 사내 대출 운용 과정에서 1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현행 가계대출 규제 취지를 훼손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현재 수도권·규제지역의 15억~25억 원, 25억 원 초과 주택의 주담대 한도가 각각 4억 원, 2억 원으로 제한된 상황에서 삼성전자 직원들은 최대 3억 원의 조달 여력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내 대출은 회사가 결정할 사안”이라면서도 “중장기적으로 자산 격차를 늘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도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당장 추가 규제에 나설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금융 상품이 아닌 데다 민간 기업의 노사가 합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정하는 복지 제도에 당국이 개입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상당수 기업의 사내 대출 규모는 3000만~5000만 원 규모로 파악하고 있다”며 “현재 사내 대출의 가계대출 관리 체계 편입, DSR 반영 등을 검토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