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권
논설위원
세상에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여러 사람이 써도 다른 사람의 소비 감소로 이어지지 않는 물품·서비스가 있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국도·공원, 가로등, 국방·치안이 대표 사례다. 공통된 특징은 남이 써도 나의 이용량이나 접근 기회가 줄지 않는 비경합성이다. 비용을 내지 않은 사람도 이용할 수 있는 비배제성도 주요 속성이다. 현대 경제학은 이런 재화를 ‘공공재’로 명명했다.
현실 정치에서는 주택, 기간 산업과 같은 필수재가 공공재 취급을 받기도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이던 2021년 주택 대란 해법과 관련해 “집은 공공재이고 땅은 국민 모두의 것”이라며 국토보유세 신설 등을 강조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3년 재임 시 “통신·금융 분야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과점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정부의 특허사업”이라며 요금·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그러나 필수재가 곧 공공재인 것은 아니다. 주택 중에서 민간분양 아파트는 사유재산이다. 통신용 주파수는 공공재이지만 민간 통신사가 비용을 치르고 특정 주파수 대역을 할당받아 운영하는 전화·인터넷 서비스는 유료 가입자만 이용할 수 있는 ‘클럽재’다. 그럼에도 정부가 필수재를 싸잡아 공공재로 취급하면 시장 질서를 왜곡하는 관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7일 “삼성전자는 사기업이지만 인공지능(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반도체는 이미 공공재가 됐다”고 말했다. 반도체로 번 초과이익 배분을 사회적으로 논의하자는 것이다. 반도체는 산업 필수재이지만 그 수급은 철저히 시장 논리로 결정돼 공공재와 거리가 멀다. 적자생존 살얼음판을 걷는 반도체 산업이 공공재 프레임에 갇히면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수도 있다. 차라리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수익을 재투자해 더 많은 부가가치와 고용·세수를 창출하도록 정부가 돕는 게 국민에게 훨씬 효용성 높은 정책이다. 대기업 재투자보다 초과이익 분배를 강조하는 정책 앞에 경제 이론이 무색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