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조가 양대 노총에 가입하지 않고 독자 노선을 유지하기로 하면서 대기업 노조 지형이 다시 기업·그룹별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성과급 인상을 요구하는 대기업 노조가 늘어나는 가운데 약자와의 연대보다 조합원 실익을 앞세우는 실리주의 흐름이 한층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29일 노동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조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에 가입하지 않고 현재의 기업별 노조 형태를 유지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계열사 노조를 추가로 결집해 조합원을 확대하고 장기적으로 삼성그룹 전체 근로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으로 성장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른 대기업 노조들도 성과급 인상 요구를 중심으로 연대 전선을 넓히는 분위기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이 같은 흐름을 두고 1980년대 말 그룹별 노조 조직이 다시 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1988~1990년 현대그룹노동자총연합과 대우그룹노동조합협의회의 등장은 당시 노동운동의 핵심 사건으로 평가된다. 그룹 계열사 노조를 한데 묶은 두 조직은 강력한 투쟁력을 바탕으로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넘어서려 했다. 하지만 한계도 뚜렷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과 근로조건 개선에 집중하면서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와의 격차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노동운동의 중심축은 업종과 지역을 넘어 노동 취약계층 보호와 사회적 연대를 내세운 한국노총·민주노총의 양대 노총 구도로 재편됐다.
삼성전자 노조의 독자 노선은 이 같은 양대 노총 중심의 노동운동과는 결이 다르다. 대기업 노조의 경우 하청 노조와 달리 상급 단체의 조직력에 기대지 않고도 회사와 교섭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별 교섭 체계가 노동시장에 깊게 자리 잡은 점도 독자 노선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이다. 현대차 노조가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임에도 상급 단체의 방침에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아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동계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계속 이어진다면 양대 노총 중심의 노조 운동이 대기업별 노조로 독자 세력화할 수 있는데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와 하청·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간극이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삼성전자 노조는 사회로 향하는 것이 바람직한 우리의 노조 운동 방향을 ‘시장’으로 끌고 갔다”고 안타까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