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설화와 무속·전통놀이 같은 지역색이 묻어나는 소재가 세계인의 보편적 감정을 자극하며 K콘텐츠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서울포럼 2026’의 특별 포럼인 ‘픽셀 앤 페인트(Pixel & Paint)’에서는 K컬처의 글로벌 경쟁력을 떠받치는 핵심 동력으로 스토리텔링의 힘이 주목받았다. 연사들은 오래된 설화와 기억, 상처와 위로, 생활 문화 속 정서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번역하느냐가 K콘텐츠의 성패를 가른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현대미술가 이수경 작가는 조상인 서울경제신문 미술전문기자와 한 대담에서 K아트의 본질을 특정 형식이나 패턴이 아닌 이야기에서 찾았다. 이 작가는 “오방색이나 한지, 태극 문양 같은 외형이 K의 본질은 아니다”라며 “한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더 크고 오래된 인간의 기억과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대표작 ‘번역된 도자기’는 이탈리아 도공이 상상으로 만든 조선백자를 일부러 깨뜨린 뒤 파편을 금으로 이어 붙이는 작업이다. 그가 표현한 깨진 파편과 균열, 복원 과정 자체가 한국 사회와 역사, 인간 존재의 상처를 은유하고 있다. 이 작가는 “기억의 근간에 있는 오래된 이야기의 보편성이 한국 관람객은 물론 해외 관람객들의 공감도 이끌어냈다”며 “파편화된 과거의 흔적과 고대의 기록, 설화와 구전된 이야기는 제게 무한한 가능성의 씨앗”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은 결국 이야기뿐”이라고 강조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영화 ‘기생충’ ‘미나리’ 등의 글로벌 투자·홍보를 지원해온 미셸 스기하라 CAPE 대표 역시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과 교수와의 대담에서 “가장 한국적인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깊이 있게 풀어낸 것이 K콘텐츠 성공의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스기하라 대표는 “무속 신앙에 뿌리를 둔 ‘케데헌’은 한국만의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우정·용기·선악 같은 모든 문화권이 공유하는 보편적 감정을 다루고 있다”며 “‘오징어게임’ 역시 한국의 전통놀이를 통해 극심한 경쟁 사회의 병폐를 보여주며 세계인의 공감을 끌어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잠들기 전까지 미디어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한국의 막강한 소프트파워는 미디어를 통해 훨씬 더 강력하게 확산되고 있다”며 “앞으로 K스토리텔링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건욱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장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데헌’ 등 K콘텐츠가 무속으로 확장되는 현상에 주목했다. 그는 외부에서 한국에 대해 궁금해하는 건 태권도와 김밥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과 위로받는 정서라고 강조했다. 그는 “AI의 설명은 점점 정교해지고 있지만 인간은 점점 더 외로워지고 있고 때때로는 과학의 설명보다 무속의 위로를 원한다”며 “한국 무속이 가진 위로와 공감의 구조가 앞으로 K스토리텔링의 핵심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