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동아시아 문화사에서 당당한 지분을 가진 문화적 주주국가였습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2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서울포럼 2026’의 특별 포럼 ‘픽셀 앤 페인트(Pixel & Paint)’에는 ‘왜 지금 세계가 한국 문화에 열광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많은 이들이 모였다. 이날 연설을 맡은 전문가들은 오늘날의 K컬처가 갑자기 등장한 유행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축적된 한국적 정서와 미학, 장인 정신이 현대적으로 발현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첫 기조연설에 나선 유 관장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화사를 관통하며 “우리는 세계 문화사 속에서 단 한 번도 기술과 미감에서 낙오된 적이 없었다”며 “백제의 금동대향로 같은 공예품과 고려의 상감기법이 활용된 청자를 보면 이전에도 K문화는 동아시아에서 상당한 문화적 지분을 차지했다”고 강조했다.
유 관장은 특히 백제의 문화는 장인 존중의 문화라고 표현했다. 그는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당시 왕비의 팔찌에 공예가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을 사례로 들었다. 신라의 반가사유상에 대해서는 “중국·일본·인도의 불상과 다른 은은한 미소를 갖고 있다”며 “기원전 600년 무렵 한국 조각 수준이 어디까지 올라갔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백제의 금동대향로와 신라의 반가사유상·성덕대왕신종에 담긴 장인 정신은 오늘날 이른바 ‘뮷즈(뮤지엄(museum)과 굿즈(goods)를 결합한 국립중앙박물관의 공식 브랜드)’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와 까치호랑이 굿즈, 달항아리를 찾는 이들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한국적 미감을 재해석한 공예품으로 받아들인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 수는 650만 명으로 세계 3위를 기록했고 박물관 상품 매출도 400억 원을 돌파했다.
‘뮷즈의 어머니’로 불리는 김미경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사업본부장은 “문화유산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풀어내자 유물이 취향이 되고 시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실제로 뮷즈는 자체 개발 외에도 외부 상품을 발굴하거나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협력해 개발하기도 하는데 백제의 장인 정신이 오늘날 ‘K굿즈’ 생태계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패션아트 개척자인 금기숙 유금와당박물관 공동관장은 한국 미학의 핵심으로 ‘흔들림’과 ‘떨림’을 제시했다. 버려진 철사를 꼬아 버려진 천이나 비즈를 달아 만든 빛나는 형상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상징하게 된 드레스 작품 시리즈 또한 전통 장신구의 움직임에서 착안한 것이다. 금 관장은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노리개와 술 장식, 넓은 치마폭까지 한국 의복 전반에는 움직임과 율동의 미학이 담겨 있다”며 “이를 통해 생명력과 상승하는 정서를 담아냈다”고 말했다. 이날 우크라이나 출신의 패션 디자인 전공자인 올가 코롤 씨는 “한국만의 독특한 아름다움과 드레스라는 현대적인 소재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반했다”며 “서로 다른 성격의 요소를 결합하는 작업을 할 때 참고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날 두 번째로 기조연설에 나선 박승호 박서보재단 이사장은 부친인 고(故) 박서보 화가의 작품 세계를 통해 한국적 정서의 또 다른 축을 제시했다. 그는 박서보 예술의 핵심 키워드로 ‘비움·반복·견딤·환원’을 꼽으며 “박서보는 평생 자신을 비우는 작업을 했지만 그 비움이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미학으로 이어졌다”고 술회했다.
행사에 참석한 김영수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은 축사를 통해 “한국 문화는 이제 전 세계인의 일상에 녹아든 생활 문화가 됐다”며 “한국 문화가 대한민국의 미래 핵심 성장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