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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입성하는 퐁피두센터

26.05.2026

오래전 파리에서 퐁피두센터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그 외형에 말문이 막혔다. 미술관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위엄 있는 석조 외벽도, 열주도 없었다. 대신 배관과 철골이 건물 밖으로 벌겋게 드러나 있었고 붉은 에스컬레이터가 유리 튜브 속을 기어오르며 파리의 하늘을 가로질렀다. 마치 공장이나 해체된 기계와도 같았다.

그러나 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피카소의 ‘여인의 흉상’ 앞에 섰을 때, 칸딘스키의 추상이 눈앞에서 진동할 때, 마티스의 색채가 공기처럼 번질 때 이 공간이 왜 현대미술의 성지인지 비로소 이해했다.

퐁피두센터는 단순한 미술관이 아니다. 1969년 프랑스 대통령 조르주 퐁피두는 파리 도심의 낙후된 보부르 지역에 전례 없는 문화 공간을 짓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미술관은 시민의 광장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건축가 렌초 피아노와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한 이 건물은 1977년 문을 열었다. 퐁피두 대통령이 임기 중 서거한 뒤 3년이 지나서였다.

그는 완공을 보지 못했으나 그의 유산은 파리를 바꿨다. 루브르가 과거를 보존하는 신전이라면, 12만 점의 소장품을 품은 퐁피두는 현재를 살아 숨 쉬게 하는 광장이었다. 피카소와 칸딘스키, 마티스, 샤갈, 뒤샹, 앤디 워홀, 프랜시스 베이컨 등 20세기 미술이 어떻게 세상의 눈을 바꿔 놓았는지 이 공간이 통째로 증언한다.

그 퐁피두센터가 이제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자리를 잡는다. 6월 4일 ‘퐁피두센터 한화’가 문을 여는 것이다. 말라가와 상하이에 이은 세 번째 민간 파트너십 협력 모델로 한화문화재단이 운영 주체가 되고 퐁피두센터와 장기 협력하는 방식이다.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은 그 설렘에 충분히 답한다. 피카소와 브라크, 페르낭 레제, 후안 그리스, 로베르 들로네 등 43명의 작품 91점이 서울을 찾는다. 사물을 여러 시점으로 쪼개고 재조립한 입체주의는 단순한 화풍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방식 자체를 뒤엎은 사건이었다. 김환기와 유영국·박래현·이수억 등 한국 근현대 작가 11인의 작품 21점을 함께 배치해 서구 미술 사조가 우리 안에서 어떻게 살아 숨 쉬었는지도 보여준다. 프랑스 미술을 수입해 보여주는 수동적인 전시가 아니라 세계 미술사 안에 한국의 서사를 당당히 편입시키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그러나 두근거림이 가라앉고 나면 냉정한 숫자가 기다리고 있다. 한화문화재단은 매년 70억 원 이상의 브랜드 로열티와 작품 대관료, 컨설팅 비용을 부담하며 4년간 운영권을 확보했다. 퐁피두라는 이름을 빌리는 대가치고는 가볍지 않은 금액이다.

선례를 보면 희망과 경고가 동시에 읽힌다. 말라가 분관은 개관 첫해 20만 명을 끌어모은 데 이어 누적 관람객 300만 명을 넘기며 2034년까지 10년 연장 계약을 맺는 성공을 거뒀다. 상하이 웨스트번드도 2019년부터 파트너십을 이어오며 중국 현대미술 시장의 거점으로 자리를 잡았다. 반면 미국 저지시티는 막대한 재정 적자에 직면해 올해 초 협력 중단을 선언했다.

서울은 어느 쪽에 서게 될까. 말라가의 성공은 피카소의 고향이라는 지역 정체성과 깊이 결합했기에 가능했고, 저지시티의 좌초는 시의 재정 적자가 큰 원인이었다. 지금 부산도 퐁피두 분원 유치를 추진 중이다. 항구도시 부산만의 이야기와 결합한다면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서울에 입성하는 퐁피두센터가 세계 중심으로 도약하는 한국 미술의 디딤돌이 될지 그 첫 시험대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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