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 압류로 은행과 카드사 이용길이 막힌 40대 이선우(가명) 씨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대부 업체를 찾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대출 승인은 부결됐다. 대신 “개인 돈을 써보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
다급했던 그는 이를 승낙했고 얼마 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최대 30만 원 한도로 1주일 뒤 상환하는 구조였다. 상환 시점을 놓치면 연체 이자 20만 원이 붙었고 이를 못갚자 협력 업체라며 제3의 업체에서 돈을 빌려 갚으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이 씨는 불법 사금융의 수렁에 빠졌다.
26일 금융계에 따르면 일부 대부 업체가 취약차주들에게 불법 사채를 소개하는 사례가 근절되지 못하고 있다. 대부 업체는 제도권 금융이고 대부분이 준법 경영을 하고 있지만 소수의 일탈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 불법 사금융 피해상담사는 “대부 업체 등록 번호를 걸어두고 실제로는 불법 사금융 연계 영업을 하는 사례가 여전하다”며 “소비자가 합법 업체에 전화를 걸면 받지 않은 뒤 다른 번호로 연락해 불법 사채를 권유하는 식”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대부업 광고 규제 강화를 포함해 불법 사금융 근절책을 여러 각도로 살펴보고 있다. 대부 업체의 모든 광고를 사전에 의무적으로 심의하고 이를 고리로 실제 영업 행태의 적정성을 따져보는 방안도 들여다보고 있다. 일부 지자체 대부 업체는 “대출을 받아도 신용등급이 안 떨어진다”는 광고도 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3월 대부업 광고에 대해 한국대부금융협회의 사전 심의를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5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대부업법 개정안(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을 소위원회에 상정했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신고포상제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선우(가명) 씨가 1년간 불법 사금융 피해를 겪은 배경에는 등록 대부업체를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불법 사금융 연계 영업을 하는 업체들이 있었다. 대부업 이용마저 어려워지면 더이상 갈 곳이 없다는 취약층의 절박한 상황을 영업에 이용한 것이다. 불법 사금융 피해 상담사는 26일 “카카오톡 오픈 채팅, 인스타그램 등 작성자 특정이 어려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불법 사금융 연계) 영업이 계속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대부업 광고 규제 강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금융 당국은 네이버나 다음 같은 대형 포털 사이트에 불법 사금융 광고가 게재됐을 경우 이를 효율적이면서 빠르게 삭제하는 방안이 무엇일지 검토하고 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현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부업 전반의 광고 및 영업 행태 전반을 재점검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행법상 대출 차주의 신용정보 등록 의무가 없는 지방자치단체 등록 대부업체 중 일부가 제도의 빈틈을 악용해 ‘신용점수가 떨어지지 않는다’ 식의 대출 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경제신문이 지자체 등록 A 대부업체에 신용대출이 필요하다며 ‘신용점수가 많이 떨어진 상태인데 괜찮나’라고 묻자 업체 측은 “저희 대출은 신용점수에 영향이 없다”고 답변했다. ‘카드론 등 기존 대출이 여러 건 있다’고 설명했지만 업체 측은 “연체된 것만 아니라면 소득에 따라 진행이 가능하다”고 재차 안내했다.
부동산담보대출을 주로 취급하는 또 다른 업체는 홈페이지에 토지담보대출 진행 사례를 소개하며 “이번 대출은 지자체 등록 대부업체인 자사가 직접 진행했기 때문에 신용 전산에 등재되지 않아 신용등급 관리에도 매우 유리하다”까지 홍보했다.
대부업체는 금융위원회 등록과 지자체 등록으로 이원화돼 있다. 금융위에 등록하는 대형 업체들은 금리·금액 등 대출 정보와 채권 양도·양수 등 채권자 변동 정보를 한국신용정보원에 제공한다. 현행법상 금융위 등록 대부업체는 종합신용정보집중기관의 신용정보 집중 대상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영세한 업체가 주를 이루는 지자체 등록 업체는 이런 의무 대상에서 빠져있다.
문제는 일부 업체들이 이 같은 차이를 ‘신용도 걱정 없는 대출’ ‘대출 기록이 남지 않는 대출’처럼 광고에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 대출 정보 공유 커뮤니티에는 지자체 등록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 기존 금융권 대출을 갚고 신용점수를 회복하는 방식이 공유되고 있다. 실제 한 커뮤니티에는 지자체 등록 대부업체에서 5000만 원을 빌려 기존 신용대출 4000만 원을 정리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러한 행태는 대부업 광고 규제 취지와 배치된다. 현행 대부업법 시행령은 인터넷 광고 등에 대부 계약에 따른 개인 신용 평점 하락 가능성을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금융권 여신 심사에서도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 지자체 등록 대부업체의 대출이 신용정보원에 집중되지 않으면 은행·저축은행·카드사 등은 대출을 실행할 때 차주의 부채가 얼마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차주 보호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규모가 큰 금융위 등록 대부업체들은 신용정보원에 정보를 등록하지만 연체가 3개월·6개월 이상 이어지면 채권을 매각한다”며 “차주 입장에서는 그 뒤로 채권이 몇 차례 매각됐는지, 현재 내 채권을 누가 갖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지자체 등록 대부업체는 7237개다. 이들의 대출 잔액은 4조 3238억 원으로 전체 등록 대부업 대출 잔액의 34.7%를 차지한다. 대부업 대출의 3분의 1가량은 신용 정보 집중 의무 밖에 놓여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