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뉴스는 지나갔지만, 그 의미는 오늘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의 그날’은 과거의 기록을 통해 지금을 읽습니다.<편집자주>
“1986년 독극물 연쇄살인범 김선자 이후 가장 잔혹한 여성 범죄자.”
2019년 5월 25일. 고유정(당시 36세)이 전 남편을 토막 살해했다. 고유정은 “아들을 만나게 해주겠다”며 전 남편 A씨를 제주도의 한 키즈펜션으로 불러냈다. 당시 아들도 현장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고유정은 카레라이스에 수면제인 졸피뎀을 넣어 A씨에게 먹였고, 피해자가 깊이 잠든 뒤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했다.
고유정은 2013년 A씨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지만 2017년 이혼했다. 이후 다른 남성과 재혼했으나, 전 남편이 지속적으로 아들과의 면접교섭을 요구하자 이를 부담으로 느껴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고유정이 새로운 결혼생활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범행을 결심했다고 봤다.
범행 준비 과정은 치밀했다. 고유정은 사건 발생 열흘 전부터 인터넷에서 ‘졸피뎀’, ‘혈흔 제거 방법’, ‘제주 바다 쓰레기’, 펜션 폐쇄회로(CC)TV 설치 여부 등을 검색했다. 또 락스와 표백제, 김장용 비닐봉투 등을 미리 구매하며 범행 도구를 준비했다.
범행 직후 행동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는 아들에게 휴대전화 게임을 하게 해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한 뒤 시신 훼손 작업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세제를 이용해 혈흔을 닦아냈고 시신을 여러 봉투로 나눠 담아 제주와 전남 완도 해상, 경기 김포 등지에 유기했다.
당시 경찰은 훼손된 시신 상태에 대해 “차마 공개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밝히기도 했다.
“성폭행 당했다” 주장했지만…법원 “범행 조작 정황”
사건은 전 남편 가족의 실종 신고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 피해자의 동생은 “형이 전 부인을 만나러 제주에 갔는데 연락이 끊겼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곧바로 CCTV 분석에 착수했고, A씨가 고유정과 함께 펜션에 들어가는 모습은 확인됐지만 이후 밖으로 나오는 장면은 발견되지 않았다.
수사 과정에서 펜션 내부 혈흔과 범행 도구로 추정되는 흉기가 발견되면서 경찰은 고유정을 유력 용의자로 특정했다. 이후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고유정을 긴급 체포했다.
체포 당시 고유정의 반응은 대중을 더욱 충격에 빠뜨렸다. 그는 “왜요? 제가 성폭행당했는데”라며 오히려 피해자 행세를 했다. 실제로 범행 직후 전 남편 휴대전화로 자신에게 “성폭행 미수로 고소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다시 자신의 휴대전화로 “미안하다. 고소는 하지 말아달라”는 답장을 보내는 방식으로 상황을 조작하려 한 정황도 드러났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범행을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정황이 명확하다”며 “성폭행 피해 주장은 신빙성이 없고 범행 이후 상황을 조작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1심 재판부는 “피해자는 2년 만에 아들을 만나러 갔다가 한나절 만에 목숨을 잃었다”며 “범행 수법과 이후 정황 모두 극도로 잔혹하다”고 지적했다.
범행 이후 고유정이 보인 행동들도 공분을 샀다. 그는 범행 다음 날 모텔 CCTV에서 시신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트렁크를 옮기며 지인과 밝게 웃으며 통화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또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을 마트에 환불하는 등 태연한 행동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의붓아들 사망 사건…끝내 무죄 확정
고유정은 전 남편 살해 혐의 외에도 재혼한 남편의 아들을 숨지게 한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숨진 아이는 재혼 남편과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4세 아들로, 사건 당시 고유정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아이는 2018년 충북 청주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고유정은 “잠에서 깨어보니 아이가 숨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부검 결과 사인은 질식사로 확인됐다. 이에 검찰은 고유정이 수면제를 먹인 뒤 몸으로 눌러 숨지게 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남편이 친아들만 아낀다고 생각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다. 1심과 2심, 대법원 모두 해당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고유정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단정할 정도의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대법원은 “아이가 함께 잠을 자던 친부의 신체에 눌려 사망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며 이른바 ‘포압사’ 가능성을 언급했다. 또 “설령 누군가 고의로 압박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를 고유정이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결국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가 확정됐다. 다만 전 남편 살해 사건의 충격이 워낙 컸던 만큼 의붓아들 사건 역시 여전히 의혹과 논란 속에 남아 있다.
한편 법원은 전 남편 유족 측이 제기한 친권상실 청구를 받아들여, 고유정은 친아들에 대한 친권도 상실했다.
사형 아닌 무기징역…“20년 뒤 가석방 신청 가능”
검찰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살인·사체손괴·사체은닉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대법원 역시 원심 판단을 확정했다.
고유정이 사형을 피하면서 가석방 가능성도 남게 됐다. 현행법상 무기징역수는 20년 이상 복역하면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 반면 사형수는 가석방 대상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차라리 사형보다 무기징역이 현실적으로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일용 교수는 방송에서 “고유정이 교도소 생활 적응을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20년 정도 지나면 가석방 신청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실제 가석방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가석방 심사 과정에서는 범행의 잔혹성, 사회적 파장, 피해 회복 여부, 국민 정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데 고유정 사건은 당시 전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대표 강력범죄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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