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종로에 호랑이가 나타나면 어디에 신고할까. 누군가 남산의 소나무를 함부로 베면, 또 과거시험에서 부정행위가 의심되는 수험생은 어떻게 했을까. 답은 ‘한성부’다. 한성부는 조선 시대 수도를 관할하는 관청을 말한다. 지금의 서울시와 비슷한 기구지만 업무는 훨씬 다양했고 일도 많았다. 오죽하면 여러 사람이 북적이는 모습을 보고 “한성부에 대가리 터진 놈 달려들 듯”이라는 속담이 생겨났을까.
‘한성부’를 통해 조선시대 서울 공무원들의 일과 삶을 조명한 기획전 ‘한성부입니다’가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한성부는 조선 왕조가 1394년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 이듬해부터 1910년까지 운영된 관청이다. 전시는 서울역사박물관이 약 30년간 수집한 유물 90점, 99건을 통해 한성부의 역사와 사람들을 조명했다.
한성부 하면 수장인 ‘판윤’이 떠오른다. 정2품의 고위직이자 육조판서로 가는 관문이었던 한성부 판윤에는 우리가 아는 유명 인사가 많다. 15세기 세종 때의 명재상 황희와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을 이끈 장수 권율, 을사늑약에 항거한 대한제국의 관료 민영환은 모두 한성부 판윤을 지냈다. 임명직이다보니 정치적 영향을 받아 515년간 총 1079명이 이 자리를 거쳐 갔다고 한다. 1년에 두 명꼴이다. 가장 오랫동안 판윤을 한 사람은 세조 때 7년 근무한 이석형이다.
오늘날 서울시가 지역 행정을 담당하는 것과 달리, 한성부는 왕의 직할 기구로 도성을 넘어 전국을 대상으로 소송 처리와 호적 관리 업무를 수행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비교적 간섭에서 자유로운 지방관과 달리 임금의 시야 안에서 막중한 책임과 업무를 맡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한성부는 직할 구역인 한양도성 내부의 5부 외에도 도성 밖 10리 지역까지 ‘성저십리’로 부르며 함께 관리했다. 성저십리의 중간인 ‘성저오리’의 경계를 표시한 ‘성저오리정계석표’가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서 발견됐는데 이번 전시에서 선보였다.
한성부의 행정 체계를 엿볼 수 있는 주요 유물로는 한성부의 초대 수장인 성석린이 1402년 ‘판개성유후사사’로 임명될 당시의 문서인 ‘성석린 고신왕지(告身王旨)’(보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공증문서로 고려 한양부에서 발급한 ‘1379년 한양부 사급입안(斜給立案)’ 등이 전시됐다. 한성부 전체 5부의 중간 관리인 참봉들의 모임을 그린 ‘오부계회도’도 흥미롭다.
현재와 비교해볼 만한 생생한 이야깃거리도 적지 않다. 조선 영조 때인 1774년 한성부 주민 이윤경에게 발급된 호적 등본 ‘준호구(准戶口)’에는 무려 206세나 된 ‘오월’이라는 노비가 등장한다. 주인이 이 노비의 재산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욕심에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는데 한성부 관리들도 별도의 조사 없이 3년마다 나이를 기계적으로 더해 만들어진 ‘서류상 인물’이 탄생했다.
이달 29일에는 학예연구사가 전시를 해설하는 ‘서울 문화의 밤, 문화로 야금야금’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장은 “한성부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서울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7월 12일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