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기업은행이 지난해 원화대출금 순위에서 우리은행을 제치고 4위로 올라섰다. 가계대출 관리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중소기업 여신을 꾸준히 늘린 기업은행의 특화 기반이 순위 반등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생산적 금융이 은행권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면서 기업금융 경쟁력이 여신 성장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22일 금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업은행의 원화대출금은 313조 9828억 원으로 주요 은행 전체 원화대출금의 16.1%를 차지했다.
기업은행의 원화대출금은 2023년 말 284조 6944억 원에서 2024년 말 298조 7391억 원, 지난해 말 313조 9828억 원으로 증가했다. 6대 은행 내 점유율도 2024년 15.9%에서 지난해 16.1%로 0.2%포인트 높아졌다. 2024년 말만 해도 기업은행의 원화대출금은 우리은행보다 1조 2298억 원 적었지만 지난해 말에는 오히려 우리은행을 13조 2239억 원 앞섰다. 2023년 4위였던 기업은행은 2024년 우리은행에 밀려 5위로 내려갔지만 1년 만에 다시 순위를 되찾은 셈이다.
순위 반등을 이끈 핵심은 중소기업 대출이었다. 기업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2024년 말 247조 2000억 원에서 지난해 말 261조 9000억 원으로 14조 7000억 원 늘었다. 같은 기간 기업은행의 전체 원화대출금 증가액이 15조 2437억 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출 증가분의 대부분이 중소기업 금융에서 발생한 것이다. 중소기업 대출 시장점유율 역시 2024년 말 23.65%에서 지난해 말 24.4%로 상승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이 가계대출 규제와 자본 관리 부담으로 외형 확대 속도를 조절하는 동안 중소기업 금융에 강점이 있는 기업은행은 상대적으로 대출 공급 여력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며 “고금리 장기화와 내수 부진으로 중소기업의 운전자금·시설자금 수요가 이어진 점도 여신 증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NH농협은행도 대출 순위에서 한 계단 올라섰다. 농협은행의 지난해 말 원화대출금은 307조 2604억 원으로 전년 말보다 15조 9536억 원 증가했다. 주요 은행 가운데 증가 폭이 가장 컸다. 이에 따라 농협은행은 2023년과 2024년 6위에서 지난해 5위로 올라섰다. 전국 단위의 지역 영업망과 기업·가계 여신 기반을 바탕으로 대출 자산을 빠르게 늘린 결과로 풀이된다.
반면 우리은행은 6위로 밀려났다. 우리은행의 원화대출금은 2024년 말 299조 9689억 원에서 지난해 말 300조 7589억 원으로 7900억 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주요 은행 전체 원화대출금이 75조 1748억 원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성장세가 크게 둔화된 셈이다. 점유율도 2024년 말 16.0%에서 지난해 말 15.4%로 0.6%포인트 하락했다. 2024년까지만 해도 기업은행과 농협은행을 모두 앞섰던 우리은행은 1년 만에 두 은행에 추월당했다.
하나은행은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며 톱3 입지를 굳히고 있다. 하나은행의 지난해 말 원화대출금은 317조 1615억 원으로 6대 은행 내 점유율은 16.3%를 기록했다. 1년 새 점유율이 0.2%포인트 상승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의 원화대출금 격차는 2024년 말 1조 8755억 원에 그쳤지만 지난해 말에는 16조 4026억 원까지 벌어졌다. 금융계의 다른 관계자는 “우리금융이 자본비율 개선과 위험가중자산(RWA) 관리에 무게를 두면서 대출 확대를 상대적으로 보수적으로 가져간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원화 예수금 순위에서는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하나은행, 농협은행, 우리은행, 기업은행 순으로 나타났다. 2024년 말 4위였던 하나은행의 원화 예수금은 지난해 말 322조 2061억 원으로 늘어나 농협은행을 근소하게 앞서며 3위로 올라섰다.
금융계에서는 은행 간 여신 경쟁의 축이 가계대출 중심에서 기업금융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부동산 규제와 가계대출 관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과거처럼 주택담보대출을 앞세워 외형을 키우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의 생산적 금융 기조가 본격화하면서 중소기업과 혁신 산업에 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 역량이 은행의 성장성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는 가계대출을 얼마나 늘리느냐보다 기업대출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관리하느냐가 중요해질 것”이라며 “기업금융 기반과 리스크 관리 능력이 은행별 여신 성장 격차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