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달 한 외신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묻는 질문에 로봇을 첫손에 꼽으면서 “로보틱스와 피지컬 인공지능(AI)은 현대차가 모빌리티를 넘어 진화하는 과정의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19일 현대차그룹이 연산 35만 개 규모의 로봇 부품 전용 생산 시설을 새로 마련하기로 한 것은 정 회장의 로봇사업 비전이 한층 구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을 생산 현장에 적기 투입할 수 있도록 핵심 부품을 내재화하고 대량 양산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2028년 미국에서 3만 대의 로봇을 생산하고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 등 제조 공정에 배치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여기에 로봇 부품 생산 공장까지 미국에 두면 물류 비용을 줄이고 공급망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 최근 중동 전쟁 여파로 글로벌 물류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만큼 현지에 제조 밸류체인을 구축할 필요성은 더욱 높아졌다. 로봇 부품 생산 공장은 아틀라스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액추에이터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이날 현지 현대차·기아(000270) 공장이 우선 확보하는 로봇 물량이 2만 5000대라는 사실도 처음 공개했다. 연간 생산 가능한 3만 대 가운데 83%에 해당하는 규모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미국 내 자동차 생산량을 120만 대로 지금보다 30만 대가량 늘릴 계획인데 이에 따른 생산성 제고를 위해 현지 로봇 생산 거점을 확대할 필요성이 커졌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배터리를 교체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사실상 24시간 내내 일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현대차그룹 노조가 고용 충격을 이유로 로봇의 생산 현장 투입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아직 로봇 사업을 펼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현지에 있는 기존 자동차 부품 라인을 로봇 부품 전용 라인으로 개편하는 방안과 전용 신공장을 짓는 안을 두루 검토하고 있다. 신규 생산 시설은 그룹 주력 계열사인 현대모비스가 맡아 운영한다. 현대모비스의 한 관계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등에서 완성차와 스타트업을 정기적으로 만나 중장기 사업 전략을 폭넓게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로봇 사업이 빠르게 궤도에 올라서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이날 아틀라스가 소형 냉장고를 통째로 들어 옮기는 영상을 공식 유튜브를 통해 공개하며 기술력을 뽐내기도 했다. 아틀라스가 산업 현장이 요구하는 전신 제어와 물체 조작 능력을 갖췄음을 증명한 것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대규모 시뮬레이션 기반 강화 학습을 통해 아틀라스가 단 몇 주 만에 이 동작을 학습했으며 학습 중 최대 45㎏의 냉장고를 옮기는 데도 성공했다고 소개했다. 현대차그룹은 “미래 휴머노이드 기술 개발 가속화를 위해 구글 딥마인드와 협업하고 있다”며 “최첨단 로봇과 로봇 AI 기술을 융합해 산업의 대전환을 가속하겠다”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의 로봇 사업에 속도가 붙을수록 이 사업을 이끌어온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상장 시기도 구체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이 최근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진행한 로보틱스 관련 기업 설명회에 장재훈 현대차 부회장과 김흥수 글로벌전략조직(GSO) 담당 부사장, 어맨다 맥마스터 보스턴다이내믹스 임시 최고경영자(CEO) 등 그룹 주역이 총출동한 점도 이 같은 관측에 무게를 싣는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는 2021년 현대차그룹이 인수할 당시 11억 달러(약 1조 2482억 원)에서 현재는 최소 수십 배 수준으로 뛰어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