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계적으로 국고채 금리가 급등(국채 가격 하락)하는 것은 중동 전쟁에 따라 인플레이션 경고등이 켜진 가운데 재정건전성 우려(영국·일본)가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여기에 더해 유례없는 반도체 호황에 따른 수요발(發) 압력이 더해진 상태다. 폭발성이 강한 금리 상승 요인이 곳곳에서 시장을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국채 시장이 비이성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가 국가부채 상환 의지를 보이면서 시장 관리 모드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올 들어 우리나라 국고채 금리는 다른 나라보다 더 빠른 상승 속도를 보이고 있다. 18일 채권 업계에 따르면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이날 연 4.239%로 마감돼 연초 대비 0.853%포인트 올랐다. 일본 국채 10년물이 이날 장중 2.8%까지 치솟아 29년 6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지만 연초 대비 상승 폭은 0.67%포인트로 우리나라에 못 미친다. 최근 금리가 급등한 영국(0.64%포인트), 미국(0.42%포인트), 프랑스(0.4%포인트)보다 오름 폭이 크다.
30년물도 비슷한 흐름이다. 이날 기준 국고채 30년물 금리는 4.196%에 마감해 연초 대비 0.941%포인트나 급등했다. 일본(0.7%포인트), 영국(0.58%포인트), 미국(0.29%포인트)의 상승 폭을 훨씬 뛰어넘는다. 단기물인 3년물 오름 폭도 0.822%포인트로 주요국을 크게 앞선다.
우리나라 국채금리가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선진국의 국채금리 상승 충격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데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따른 경기 개선 전망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위원은 “유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선진국 국채금리 상승 등이 국고채 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지만 최근 유독 약세를 보이는 것은 올해 3%에 육박하는 성장률 전망 때문으로 보인다”며 “반도체 호조가 3년 이상 장기 사이클로 이어질 경우 잠재성장률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채권시장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올 1분기 성장률은 1.7%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며 국내외 주요 기관은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2% 초반대에서 2% 중후반대로 높이고 있다.
장기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고 있는 점도 이유로 거론된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대통령, 재정 관료들이 다른 선진국보다 재정 건전성이 양호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시장은 우리나라 국가부채 자체가 빠른 속도로 느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며 “특히 유례없는 법인세 수입이 예상되는 데도 이를 경기 부양에 활용하려는 모습이 부각돼 채권시장에서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남진 원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도 “올해 적자 국채만 110조 원 규모의 발행이 예고된 상황에서 반도체 수출 호조에 따른 초과 세수가 유일한 숨통이었다”며 “과거와 달리 정부가 초과 세수를 부채 상환에 쓰겠다는 시그널을 주지 않으면서 시장의 기대가 꺾였다”고 지적했다.
단순한 채권 매도세보다 투자를 미루는 ‘매수 파업’ 현상이 자리하고 있는 분석도 나온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경기 개선 국면에서도 통화 긴축과 재정 확대가 동시에 나타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며 “이 경우 시장 참가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단순한 채권 매도세보다 ‘매수 파업’”이라고 진단했다.
시장에서는 채권금리 상승이 글로벌 현상이지만 추가 상승 폭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지금이라도 국가부채 관리에도 신경쓰겠다는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산업 호황에 따른 법인세 증가로 초과 세수도 늘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이를 국채 상환 등 부채 관리에 활용한다는 시그널을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 3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당시 올해 법인세 수입 전망치를 101조 3000억 원으로 추산했는데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전망치를 크게 웃돌아 법인세 수입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법인세는 전년도 실적을 기준으로 이듬해 3월 납부하지만 자산 5조 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은 지난해부터 8월 중간예납 가결산을 의무화해 상반기 호실적이 올해 법인세 증가로도 이어진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실질적으로 초과 세수를 활용한 채권시장 안정화 의지가 확인되지 않는다면 금리의 하방 압력은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윤 연구위원 역시 “올해 국고채 발행 물량이 226조 원 수준인데 부채 상환이 이어지지 않을 경우 2028년에는 260조 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며 “올해 초과 세수가 세계잉여금으로 넘어갈 경우 이를 부채 관리에 일부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