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거리연장형전기차(EREV)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을 돌파할 배터리 업계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EREV 시장은 특히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장할 조짐을 보인다. 미국에서는 전기차 구매 부담과 짧은 주행거리라는 전기차의 약점을 해결한 EREV가 연간 100만 대 이상 판매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프로스트앤설리반은 2040년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EREV가 차지하는 비중은 8%일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미국 순수전기차(BEV) 수준(7.7%)까지 올라가 연간 100만 대 이상이 판매되는 핵심 파워트레인으로 안착한다는 얘기다.
EREV는 전기차의 치명적인 단점인 주행거리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대안으로 평가된다. 1회 충전 시 주행 가능 거리는 1000㎞ 수준으로 순수 전기차보다 최대 2배 이상의 거리를 주행할 수 있다.
미국은 장거리 운행 수요가 많은데 지역별로 전기차 충전 인프라 편차가 크다. 내연기관 차량은 휘발유나 경유를 구비하는 식으로 대응이 가능하지만 전기차는 충전 시간이 필요해 땅덩이가 넓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았다.
특히 전기차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구매 시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세액공제를 지난해 9월 종료하면서 비용 부담까지 크게 늘었다. 이에 지난해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127만 5714대로 2024년(130만 1441대)보다 2% 줄어들었다. 미국 내 전기차 판매가 감소한 것은 10년 이내 처음있는 일이다.
EREV는 기존 내연기관차와 똑같은 크기의 연료탱크를 탑재해 이 같은 문제점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 EREV는 평소에는 전기차처럼 모터로만 달리지만 배터리 충전이 필요할 때는 엔진이 발전기 역할을 하며 배터리를 충전한다. 내연기관 엔진은 발전기 역할만 하고 실제 운행은 전기모터만 구동하는 식이다.
배터리 용량이 40㎾h 수준으로 전기차 배터리 평균인 70~80㎾h보다 40%가량 적다는 점도 EREV의 강점이다. 배터리 탑재량이 줄어드는 만큼 차량 가격 부담을 낮출 수 있고 원자재 사용량도 절감할 수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배터리 가격과 충전 문제가 전기차 대중화의 최대 걸림돌로 꼽히는 만큼 EREV가 시장 확대 과정에서 현실적인 절충안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북미 지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국내 배터리 3사는 미국을 중심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EREV용 배터리를 새로운 수익원으로 활용할 여지가 크다.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의 자리를 빠르게 메우고 있는 하이브리드차량(HEV)은 탑재되는 배터리 용량이 2㎾h에 못 미친다. 100만 대가 팔려야 2GWh 수준의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데 규모는 2000억 원 수준에 그친다. 반면 EREV는 배터리 용량이 전기차보다는 작지만 하이브리드보다는 20배 넘게 커 배터리 업계에서도 의미 있는 수준의 매출과 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
완성차 업체들이 발 빠르게 EREV 차량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 만큼 배터리 3사의 EREV용 배터리 수요가 꾸준히 확장될 여지도 크다. 현대차그룹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EREV 모델을 출시할 예정이다. 스텔란티스와 폭스바겐도 차량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미 2024년 EREV가 130만 대가량 판매되는 등 리오토 등의 업체를 중심으로 시장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배터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존 배터리셀을 EREV용 배터리로 활용할 수 있어 추가 연구개발(R&D)이나 시설 투자 필요성이 적다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