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시각화는 텍스트의 단순 보조 수단을 넘어 뉴스 핵심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축으로 빠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온라인 환경 속 독자의 ‘읽기 방식’이 변화하면서 뉴스룸에서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뿐 아니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탓이다.
지난해 11월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MIT와 노스이스턴대학교(Northeastern University)에서 열린 ‘인포메이션 플러스 2025(Information+ Conference 2025)’에서는 데이터 시각화를 기술적 결과물이 아닌 ‘사회적 언어’이자 ‘저널리즘의 핵심 매개’로 바라보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어졌다.
‘인포플러스’는 데이터 시각화와 정보디자인 분야 연구자, 언론사 그래픽기자, 디자이너들이 2년마다 새로운 도시에서 모이는 국제 행사다.
행사 개최지인 보스턴은 미국 내에서도 학문 및 실무 결합이 긴밀하게 일어나는 도시 중 하나다. 하버드와 MIT, 노스이스턴대 등을 중심으로 연구기관 및 저널리즘 스쿨, 정책 연구소들이 한 데 모여 있다. 덕분에 학술적 담론이 현장 기술로 전이되고, 실무 문제의식은 연구로 환원되는 움직임이 자연스럽다. 유서 깊은 도시로 손꼽히는 만큼 곳곳에 남겨진 역사의 흔적들은 보스턴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데이터 저장고’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서사를 기록하는 ‘사회적 언어’
콘퍼런스 첫날, MIT 캠퍼스 미디어랩에서는 ‘이지 데이터 비즈(Easydataviz)’ 호세 두아르테(Jose Duarte) 디렉터의 워크숍 ‘Let’s Play with Data!’가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강의실 밖으로 나서서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해 직접 데이터를 수집했다.
데이터는 종이와 펜, 스티커 등 아날로그 도구로 즉석에서 시각화가 이뤄졌다. 두아르테 디렉터는 “완성도 높은 시각물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과 맥락” 임을 강조했다. 데이터는 파편화된 정보의 응집체이자 상황과 경험을 담은 기록으로서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담론은 노스이스턴대 캠퍼스에서 진행된 학술 발표에서도 이어졌다. 사라 윌리엄스(Sarah Williams) MIT 교수는 중남미 이주민들의 국경 이동 비용을 다룬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이주민들과 실제 지폐를 엮어 대형 태피스트리를 제작함으로써 22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이주 비용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냈다. 화폐 가치 폭락으로 지폐 가방을 만들며 버텨온 이주민들의 삶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윌리엄스 교수는 “고단한 삶이 투영된 데이터가 결국 강력한 울림을 만들어냈고 바이든 행정부의 ‘합법적 이주 경로 확대 법안 마련’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전했다.
양류화잉(Liuhuaying Yang) 오스트리아 비엔나 CSH(Complexity Science Hub Vienna) 연구원의 사례도 눈길을 끌었다. 양 연구원은 중국계 미국인 여성들의 이름을 수집해 이민과 동화(同化)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상실되어왔는지 조명했다. 시각화에는 데이터를 유형의 예술로 치환하는 데이터 아티스트이자 설치 미술가 멜린다 시포스(Melinda Sipos)가 함께 했다. 데이터 시각화가 소외된 집단의 서사를 알리는 입체적 기록물이자 비판적 장치로 기능한 셈이다.
한국 출신 연구자들 역시 데이터 기반의 사회적 실천을 선보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김미현 텍사스 주립대 교수는 ‘비판적 데이터 시각화’세션에서 대학 교원 간 급여 불평등과 특정 계층이 마주한 구조적 임금 불균형 문제를 공론화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실제 급여 인상과 같은 실질적 제도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특히 수치 데이터에 학내 구성원들의 개인적 내러티브를 결합해 데이터가 단순한 지표를 넘어 공감 유도 및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현장에는 다양한 대학 기관의 교육자들이 참석한 만큼 뜨거운 반응이 일렁였고, 김 교수는 “변화를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달라”며 요청하기도 했다.
후반부 발표자로 나선 싱가포르 국립대 안채원 교수는 ‘데이터 저항’을 주제로 서울 세운상가 재개발 이슈를 다뤘다. 데이터 시각화로 접근해 개발 과정에서 지워지는 장소의 흔적들을 기록한 것이다. 현실 공간을 가상에 복제한 디지털 트윈 등 ‘다각적 데이터 실천’이 정부의 획일적 정비 방식에 맞서 비전을 제시하는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작은 그래픽이 곧 큰 그래픽(Small is big)”
콘퍼런스 마지막 날까지도 실무와 학계를 넘나드는 열띤 발표가 이어졌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하이라이트는 언론사 실무진들의 세션이었다. 특히 뉴욕타임스(NYT)와 파이낸셜타임스(FT)의 그래픽 기자들이 뉴스룸 현장의 치열한 제작 과정을 공개하자 참가자들의 몰입도는 최고조에 달했다. 시간 및 물리적 제약이 일상인 이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시각물은 독자의 이해를 돕는 가장 순수한 인터페이스가 돼야 한다”는 것.
뉴욕타임즈 비주얼 뉴스팀의 케네디 엘리엇(Kennedy Elliott) 기자는 트럼프 행정부 시기 정부 효율부(DOGE) 창설과 대규모 공무원 감축을 추적한 보도를 예로 들었다. “당시 행정명령이 쏟아지고 정부 웹사이트와 데이터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기자들은 보도를 위해 기존 공식 데이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해고 데이터를 유형별로 분류해 타사와 교차 검증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자체 데이터 셋을 구축해야 했다”며 당시의 고충을 털어놨다.
NYT 시각화 팀이 선택한 전략은 화려한 인터랙티브나 큰 규모의 그래픽 제작이 아니었다. 빠르게 읽히는 작은 차트와 리스트, 단순 구조의 그래픽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엘리엇 기자는 “가장 작은 것이 때로는 가장 큰 것(small is big)”임을 강조했다. 정보 과잉의 혼란 속에서 명확하고 단순한 시각물이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데이터 시각화가 정보를 설명하는 기술을 넘어 독자들에게 ‘방향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저널리즘의 핵심 요소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제 6살 딸은 ‘사자’라는 글자를 모르지만 그림책에서 사자 그림을 보는 순간 그것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아챕니다.”
엘리엇 기자는 ‘직관’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딸과의 일화를 예로 들었다. “시각 매체는 텍스트보다 훨씬 빠르고 원초적인 언어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엘리엇 기자는 세션을 마치며 “잘 만든 그래픽 하나가 4000단어의 글보다 강력하다”면서 “우리가 만드는 작은 그래픽들이 모여 인류의 ‘시각적 문해력(Visual Literacy)’을 구축하는 역사적 과정이 된다”고 덧붙였다. 데이터 시각화는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로 ‘그래픽의 역사적 어휘집’을 한 페이지씩 써 내려가는 숭고한 작업인 셈이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