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 후 각 부서 업무보고를 통해 원화 국제화와 글로벌 담론 주도권 확보라는 중장기 전략을 본격화했다. 지급결제 인프라를 축으로 디지털화폐와 국제 협력을 결합해 원화의 국제적 위상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업무보고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글로벌 금융 질서에서 한국의 위상 강화다. 신 총재는 특히 금융결제국 업무보고에서 중앙은행의 본질적 기능을 ‘지급결제’에서 찾으며 정책 방향의 근간을 재정립했다.
신 총재는 중앙은행의 기원을 언급하며 영란은행과 네덜란드 중앙은행 사례를 들어 통화정책 이전에 ‘지급결제 보증’이 핵심 기능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대 중앙은행에서도 결제 시스템은 정책 수행의 기반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원화 국제화를 위한 인프라 혁신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곧바로 정책 구상으로 이어졌다. 핵심은 ‘역외 원화결제 시스템’ 구축이다. 외국 금융기관이 원화를 직접 조달하고 결제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 원화 사용 기반을 해외까지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국경 간 거래에서 원화 활용도를 높이고 보다 안정적이고 투명한 외환시장 환경을 구축하겠다는 의도다.
결제 인프라 개편도 병행된다. 뉴욕·런던 등 주요 금융허브와의 시차를 고려해 한은은 한은금융망(BOK-Wire+) 운영 시간을 24시간 체제로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글로벌 외환동시결제 시스템(CLS)과의 연계도 정교화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외환 거래의 접근성과 안정성을 국제 기준에 맞게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특히 디지털화폐 분야에서는 속도전이 예고된다. 신 총재가 국제결제은행(BIS) 재직 당시 관여했던 ‘아고라 프로젝트(Project Agora)’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면서다. 아고라 프로젝트는 예금토큰과 기관용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활용해 차세대 통화·결제 시스템의 구조를 설계하는 국제 협력 사업이다.
한은이 추진 중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사업인 ‘한강 프로젝트’와 연계될 경우, 원화 기반 예금토큰의 글로벌 활용 가능성도 한층 커질 수 있다. 특히 신 총재가 BIS 시절 아고라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만큼 향후 프로토타입 고도화 등에서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아울러 아고라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뉴욕 연방준비은행 등 주요 기관과의 협력도 한층 긴밀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협력국은 이러한 전략을 글로벌 무대와 연결하는 축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을 중심으로 주요국 중앙은행과의 협력 채널을 강화하고 글로벌 금융 현안에 대한 논의를 주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특히 한은이 참여해 온 글로벌금융시스템위원회(CGFS)는 BIS 내 최고위급 핵심 협의체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참여해 금융시장 리스크를 점검하고 정책 대응 방향을 논의하는 기구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위기 당시에도 선제적 리스크 진단과 정책 공조를 이끌며 각국 통화·금융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바 있다.
신 총재는 한은이 CGFS를 무대로 글로벌 금융 의제 설정에 보다 직접 참여하는 것을 넘어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주요 부서의 기능 강화를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서 간 협업도 강화된다. 금융시장국, 국제국, 금융안정국, 경제연구원 등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한국 경제와 밀접하면서도 글로벌 파급력이 큰 이슈를 발굴·분석하고, 이를 국제 논의의 핵심 의제로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