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대우그룹이 중동 진출에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던 건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에 끝까지 남아 의리를 지켰기 때문입니다.”
과거 한·이란 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윤영석 전 대우그룹 총괄회장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중동 사태를 계기로 촉발한 에너지 가격 상승과 공급 차질에 문제를 두고 “‘2차 오일쇼크’ 사태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 전 회장은 ‘2차 오일쇼크’를 촉발한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대우그룹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란에 남아 전쟁으로 폐허가 된 기반시설에 대한 복구 지원에 나선 일화를 소개하며 “사실 이란과 대우는 특수관계였다”고 표현했다. 그는 “이를 계기로 미국의 대이란 제재 속에서도 수십 년간 대우자동차 이란 공장 설립, 대우조선의 유조선 수주, 대우건설의 중동 진출의 성과를 거뒀다”며 “한국중공업 사장 시절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오만, 카타르 등 중동지역 발전소와 담수화 시설 사업을 독식할 수 있었던 비결도 여기에 있다”고 전했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전 세계가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28일 원유 200만 배럴이 실린 일본 국적 유조선이 통행료 지불 없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1953년 ‘닛쇼마루호 사건’으로 이어진 양국 간의 인연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일본이 이란 원유 수출이 전면 중단 상황에서 닛쇼마루호를 몰래 보내 이란 원유를 싣고 빠져나왔고, 이를 계기로 이란산 원유 수출이 재개됐다. 윤 전 회장은 “대우그룹 사례처럼 어려웠던 시절 쌓은 우정이 나중에 수십 배, 수백 배에 달하는 보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며 “이번 중동 전쟁이 우리 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샐러리맨 신화’로 불리는 윤 전 회장은 대우실업 사원으로 입사해 대우중공업, 대우조선공업, 대우그룹 사장을 거쳐 그룹 총괄회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대우중공업 사장으로 승진할 당시 그의 나이는 42살이었고, 이후 30년 넘게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지켰다. 고(故)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과는 1964년 한성실업 사원 시절 직장 선후배 사이로 처음 만나 35년을 함께하며 대우신화를 일궈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에는 공기업인 한국중공업 사장과 두산중공업 부회장을 지냈다.
중소기업에서 상사맨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윤 전 회장은 “대기업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며 “직장인이라고 해서 회사를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게 없다. 열심히 일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면 결과는 나한테 돌아온다”고 했다. 실제 대우그룹 내에서 윤 전 회장은 ‘대사장’ 김우중 회장에 빗대 ‘소사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대기업 회장까지 오를 수 있었던 비결로는 주인의식을 꼽았다. 그는 “회사에 입사한 이래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월급쟁이 생활을 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며 “CEO로의 승진은 그만큼 회사가 나에게 신뢰를 줬다는 것에 책임감을 느끼고 끝까지 일을 주도해나갈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일자리가 감소하면서 대졸 구직자들이 자포자기하는 등 ‘고학력 백수’가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선 “어떤 회사에 다니더라도 열심히 일해서 좋은 성과를 내면 그 결과물은 결국 자신한테 돌아온다”며 “기업의 네임밸류나 규모를 따지기보다 도전에 가치를 둬야 한다”고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발표한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개선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쉬었음’ 항목으로 분류되는 청년은 42만 8000명으로 2023년 이후 3년 연속 증가세를 나타냈다.
그는 소위 ‘흙수저’ 출신으로 성공한 배경에 대해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를 강조했다. 윤 전 회장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이한 지금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했던 1970~80년대 대한민국 산업화 시기와 매우 비슷하다”며 “당시에 대단한 일자리가 있었겠느냐. 그 어느 때보다도 젊은 세대의 도전 정신이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고 언급했다.
그는 최근 회고록 ‘기적을 만들던 순간들, 역시 사람이었다’를 통해 한국 산업의 성장 과정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책은 그가 대우에 입사해 섬유부터 비료·철강·중장비를 판매하던 종합상사 시절부터 중공업·조선으로 사업 확장과 기술 국산화, 공기업 한국중공업의 성장, 대우그룹 해체까지 1970~90년 한국 산업계의 성장 과정 전반의 내용을 담았다. 윤 전 회장은 “한국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 기업을 일궈낸 과정들에 대한 설명과 어떻게 기술을 개발했고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그 과정에서 함께 피땀을 흘린 정책 입안자와 회사 동료, 경쟁사 직원들까지 모든 이야기가 담겼다”고 소개했다.
한국 산업 성장의 산 증인이기도 한 그는 이공계 인재 확보에 대해서 입장을 전했다. 윤 전 회장은 대우중공업 사장 시절 서울대 공대 기계과 졸업생 전원을 입사시킨 일화로도 유명하다. 당시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사내에 교육기관을 설립해 입사 초기 엔지니어들은 2년간 의무적으로 전문교육을 받게 했고, 교육이 끝나면 무조건 대리로 승급시키는 특혜를 제공했다. 그는 “대우그룹이라는 실체는 사라졌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50대 기업 CEO 중 상당수가 대우 출신들이었다”며 “당시 인력들이 곳곳에 포진해 대한민국 산업계를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 모든 것은 사람에 대한 무한한 투자가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는데 무엇보다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