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공 예정일이 1년 뒤로 미뤄진 154㎸(킬로볼트) 기장~장안 송전선로 건설 사업은 부산 기장군 기장·일광·정관읍을 경유하는 약 9㎞ 구간에 송전철탑 27기를 세우는 사업이다. 한국전력공사는 동남권 방사선 의·과학 일반산업단지 및 일광 신도시 등 기장군 일대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이 사업에 착수했다. 특히 올해 2월 준공된 동남권 방사선 의·과학 산단은 광주와 부산·구미를 잇는 정부의 ‘남부권 반도체 벨트’ 전략에서 핵심 기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국가 전력반도체 생산 허브를 목표로 하고 있는 이 산단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핵심 인프라인 전력망 준공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당초 한전은 154㎸ 기장~장안 송전선로 건설 사업을 2019년 10월 시작해 2025년 10월께 마무리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사업 기간은 지난해 2027년 10월로 한 차례 밀린 뒤 이번에 또다시 1년이 연장됐다. 단순 계산하면 송전선로 1㎞를 까는 데 1년씩 걸리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전력 업계에서는 수많은 지연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동해안 울진에서 경기도 하남까지 280㎞ 구간에 철탑 436기를 설치하는 국내 최장·최대 규모 초고압직류송전(HVDC)망 구축 사업(동해안~동서울 HVDC 송전선로)은 하남시의 동서울 변환소 증설 사업 반대에 수년째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까지 나서 하남시 주민들을 만났지만 여전히 갈등이 해결되지 못하면서다.
김 장관은 20일 기자 간담회에서 “주민들이 추진 과정에서 불법은 없었는지, 대안 부지는 없는지 검토해달라고 해서 살펴봤지만 결과적으로 현재 조건에서 다른 대안을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 내부적인 판단”이라며 “주민 수용성을 최대한 높일 방법을 찾아 주민들과 협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동해안~동서울 HVDC 송전선로와 함께 99개 국가기간전력망 사업 중 하나로 선정된 345㎸ 북천안~신기흥 송전선로 사업도 마찬가지다. 이 사업은 2023년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른 장기 송변전설비계획 수립 당시 2032년 이후면 준공이 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지난해 수립된 제11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서는 2036년 12월로 전망됐다.
이 사업은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에 전력을 원활히 공급하기 위한 핵심 인프라 사업이지만 인근 지역 주민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있는 만큼 향후 추가로 지연될 가능성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 ㎞짜리 사업부터 수백 ㎞짜리 국가 중요 인프라 사업까지 전국 곳곳의 크고 작은 전력망 확충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는 셈이다.
공사 지연에 따른 부작용은 전력망 병목현상뿐 아니라 재정 낭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전이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 공사 지연으로 인해 입은 손실은 1조 1727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입지 선정에만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면서 한전은 석탄화력발전보다 비용이 더 비싼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사와야 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사업 착수 후 22년 만인 지난해 4월에야 마쳤다. 이 외 공사 연장에 따른 각종 추가 비용과 발전소 출력제한에 따른 민간 사업자들의 손실 등을 감안하면 전력망 건설 지연으로 인한 손실 규모는 수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각종 산단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에 필요한 전력망을 깔기 위한 투자금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다. 한전에 따르면 2038년까지 전국 70개 노선(총연장 3855㎞)의 송전망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72조 8000억 원에 이른다. 여기에 배전망 투자비 10조 2000억 원을 더하면 총투자비가 80조 원을 훌쩍 넘기게 된다. 2040년 기준 전력 수요는 2038년보다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송배전망 구축 비용도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송전망 사업이 1년 늦어지면 기회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한전은 주민 수용성을 높이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전 관계자는 “송변전 설비 건설 과정에서 특정 지역에 대한 일방적 희생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지역 간 연대 등 갈등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상황”이라며 “전력망 건설 갈등 및 주민 수용성 제고를 위해 정보 공개 플랫폼을 통한 실시간 건설 사업 현황 공개, 보상 강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