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까지 20년이 걸렸지만, 분명 그만한 시간이 필요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홍보차 이달 초에 내한했던 메릴 스트리프가 한 말이다. 최근 언론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은 영화는 그의 말 그대로였다. 스마트폰이 없던 2006년과 스마트폰에 잠식된 2026년의 언론 현실을 대조해 보여주며 20년의 기다림이 결코 아깝지 않음을 당당하게 증명했다.
영화는 탐사보도상을 받는 날 팀원 전원이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는 앤디(앤 해서웨이)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첫 장면부터 언론이 마주한 잔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투영했다. 이어 앤디가 위기에 처한 잡지 ‘런웨이’의 구원투수로 재입사하며 극은 긴박하게 흘러간다.
가장 충격적인 변화는 ‘런웨이’의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리프)의 모습이다. 비서에게 코트와 가방을 집어 던지던 권력의 정점은 사라졌다. 자신의 손으로 코트를 걸고, 돋보기 없이는 스마트폰을 보기 힘들어하는 그의 모습에서 세월에 마모된 권력의 무상함을 엿보게 된다. 20년이라는 시간은 언론 환경도 크게 변화시켰다. 기사를 한 꼭지라도 넣기 위해 줄 서던 명품 브랜드는 이제 ‘갑’이 됐다. 미란다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며 협찬을 얻어내는, 생존을 지상 과제로 여기는 ‘현실판 직장인’이 됐다. 갑을 관계의 역전은 이게 끝이 아니다. 미란다 밑에서 아등바등하던 에밀리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변신하며 권력을 휘두른다.
영원할 것만 같던 ‘미란다의 시대’가 저무는 듯 보이지만 영화는 사람의 의미, 일의 가치에 대해 희망의 시선을 놓지 않는다. 비정한 현실 속에서 서로의 실력과 존재를 인정하는 미란다와 앤디의 연대는 불가능할 것만 같던 미션을 완수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특히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미란다의 솔직한 고백은 오늘 하루 살아내기조차 버거운 이 시대 직장인들에겐 값진 헌사이자 응원이다. “사람들이 뭐라든 상관없어. 그냥 이 일이 너무 좋아.” 그가 끝까지 지키려 한 것은 권력이 아닌 ‘일’ 자체였음을 고백한 것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시대는 끝났고, 우아하게 살아남는 것은 갈수록 불가능해지고 있다. 하지만 치열한 전장에서 실력과 열정으로 버티며 자기 자신과 일을 지켜내는 것. 그것이 새 시대에 맞는 우아함이라고 20년 만에 만난 영화는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