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영자였어도 그렇게 선택했을 것 같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9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30회 서경 금융전략포럼’에서 “주택담보대출과 일반 기업대출을 비교해보면 합리적인 선택은 주담대”라며 이 같이 꼬집었다.
실제로 국내 금융기관의 부동산 관련 대출 규모는 2012년 말 639조 원에서 지난해 말 1740조 원으로 2.7배 불어났다. 1995년 17.5%에 불과했던 가계자금대출 비중은 2024년 40.2%로 치솟았다.
금융위기를 거치며 국내외에서 건전성 규제가 강화되자 수익성 대비 리스크가 낮은 부동산담보대출이 은행권의 합리적 선택으로 굳어졌다는 뜻이다. 여기에 그간 가계 입장에서 금융투자 자산이 매력적인 선택지로 꼽히지 못하면서 부동산 쏠림이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이 원장의 진단이다. 이 원장은 국내 금융기관의 부동산 쏠림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의 정상화를 통해 ‘돈의 흐름’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부동산 쏠림의 원인을 크게 가계 부문과 금융기관으로 나눠 분석했다. 우선 가계 측면에서는 한국의 자본시장이 포트폴리오상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원장은 “가계의 부동산 투자 선호는 금융투자 자산 및 자본시장의 저성장이 반영된 결과”라며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가장 심한 게 자본시장”이라고 지적했다.
이러다 보니 현재의 가계 자산 구조가 ‘가분수형’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이 원장의 진단이다. 그는 “우리 가계의 평균 자산 구성을 보면 거주·비거주 부동산의 비중은 각각 42%·29%인 반면 금융 자산은 24%에 불과한 매우 가분수적인 구조”라고 했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도 부동산 담보대출 취급이 ‘합리적인 선택’으로 굳어졌다고 이 원장은 지목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건전성 규제로 인해 주담대처럼 환금성이 높은 대출을 취급할 유인이 커졌다는 의미다.
이 원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리스크 전이를 막기 위한 바젤Ⅲ 체제가 강화됐는데 이 같은 방어적 규제 체계 때문에 역설적으로 부동산 쏠림이 나타났다”며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바젤Ⅲ 체제를 수정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 역시 생산적인 부분으로 자금의 물꼬를 바꾸려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이 외에도 이 원장은 부동산 금융 쏠림의 원인으로 △부동산 호황기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 급증 △정책금융 확대를 지목했다.
이 원장은 이 같은 부동산 쏠림이 금융 건전성과 실물경제 측면에서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미 글로벌 금융위기 때 부동산 가격 하락 충격이 부문 간 조정을 통해 추가적인 담보 가치 하락을 연쇄적으로 일으킨 바 있다”며 “부동산 PF 부문에서도 직접금융시장 위축과 자금 경색을 비롯한 현상이 연이어 나타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이 원장이 소개한 금융감독정책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부동산대출 규제 강화 기조다. 이 원장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89%인 가계부채 총량을 2030년까지 80%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이 목표”라며 “최근 시행한 다주택자의 규제지역 내 주담대 만기 연장 제한에 이어 투기적 목적의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대출 규제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리스크 규제부터 재설계해야 한다는 것이 이 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주담대의 위험 가중치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은 것 같다”며 “현재 주담대 위험 가중치 하한을 15%에서 20%로 높였는데 이를 넘어서 단계별로 더 강화된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자본시장 선진화를 통해 금융투자상품이 부동산보다 매력적인 자산으로 부각될 수 있게끔 유도하겠다는 입장이다. 코스피 상승을 계기로 부동산에 쏠려 있던 자금이 움직이면 금융사의 리스크를 낮추고 주거 안정의 길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코스피 5000이나 6500은 마중물이며 실제 생산적인 부분으로 돈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바뀌는 메커니즘을 어떻게 탄탄하게 만들 것이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께서 집권 전에 구상했던 것은 주거 정책과 금융 정책이 분리된 게 아니라는 점”이라며 “돈이 냄새를 맡고 자연스럽게 흐를 부분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원장은 추가적인 시장 선진화와 투자자 신뢰 확보 없이는 머니무브가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상법 개선과 주주 환원만으로는 머니무브가 계속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며 “부동산 부문의 쏠림을 완화하고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의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감리 주기는 최대한 단축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감독 수준을 높일 계획이다. 이 원장은 “미국은 감리 주기가 3년이고 영국은 5년”이라며 “우리는 20년이 넘는데 이를 최대한 단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 현장과 소통해 모험자본 투자 체계 전반을 재설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 원장은 “금융 현장과 산업 현장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서 정책의 미시적인 부분을 메워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다만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은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머징에 남아 있는 것과 선진국으로 가는 것은 양면적인 부분이 있다”며 “MSCI 선진국 편입을 추진하지만 서두르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