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29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30회 서경 금융전략포럼’ 강단에 서자마자 도표를 하나 제시했다. 국내 대출 중 가계자금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의 추이를 1995년부터 2024년까지 나타낸 그래프였다. 1995년 17.5%에 불과했던 가계자금대출 비중은 2024년 40.2%로 치솟았다.
이 원장은 이 같은 부동산 금융 쏠림의 원인으로 △금융기관의 부동산담보대출 선호 △가계의 부동산 투자 선호 △부동산 호황기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 급증 △정책금융 확대를 지목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국내외에서 건전성 규제가 강화되자 수익성 대비 리스크가 낮은 부동산담보대출이 은행권의 합리적 선택으로 굳어졌다는 것이 이 원장의 진단이다.
그는 “주택담보대출과 일반 기업대출을 비교해보면 합리적인 선택은 주담대”라며 “내가 경영자였어도 그렇게 선택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내 금융기관의 부동산 관련 대출 규모는 2012년 말 639조 원에서 지난해 말 1740조 원으로 2.7배 불어났다.
가계 입장에서 금융투자상품이 매력적인 대체재로 여겨지지 않았다는 점도 금융권의 부동산 쏠림을 부추긴 원인으로 꼽힌다. 이 원장은 “우리 가계의 평균 자산 구성을 보면 거주·비거주 부동산의 비중은 각각 42%·29%인 반면 금융 자산은 24%에 불과한 매우 가분수적인 구조”라며 “가계의 부동산 투자 선호는 금융투자 자산 및 자본시장의 저성장이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 원장은 이 같은 부동산 쏠림이 금융 건전성과 실물경제 측면에서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미 글로벌 금융위기 때 부동산 가격 하락 충격이 부문 간 조정을 통해 추가적인 담보 가치 하락을 연쇄적으로 일으킨 바 있다”며 “부동산 PF 부문에서도 직접금융시장 위축과 자금 경색을 비롯한 현상이 연이어 나타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권의 부동산 쏠림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리스크 규제부터 재설계해야 한다는 것이 이 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리스크 전이를 막기 위한 바젤Ⅲ 체제가 강화됐는데 이 같은 방어적 규제 체계 때문에 역설적으로 부동산 쏠림이 나타났다”며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바젤Ⅲ 체제를 수정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 역시 생산적인 부분으로 자금의 물꼬를 바꾸려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이 원장이 주담대에 자본 건전성 규제상 페널티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힌 배경이기도 하다. 그는 “주담대의 위험 가중치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은 것 같다”며 “현재 주담대 위험 가중치 하한을 15%에서 20%로 높였는데 이를 넘어서 단계별로 더 강화된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 당국의 부동산대출 규제 강화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점도 재차 언급했다. 이 원장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89%인 가계부채 총량을 2030년까지 80%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이 목표”라며 “최근 시행한 다주택자의 규제지역 내 주담대 만기 연장 제한에 이어 투기적 목적의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대출 규제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부동산 쏠림 완화는 자연스럽게 생산적 금융 활성화와 연결이 될 수밖에 없다”며 “돈값을 하는 시장을 형성하도록 감독 정책을 설계해야 할 것”이라고도 힘줘 말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 현장과 소통해 모험자본 투자 체계 전반을 재설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 원장은 “금융 현장과 산업 현장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서 정책의 미시적인 부분을 메워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자본시장 선진화를 통해 금융투자상품이 부동산보다 매력적인 자산으로 부각될 수 있게끔 유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원장은 “상법 개선과 주주 환원만으로는 머니무브가 계속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며 “부동산 부문의 쏠림을 완화하고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의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