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일
논설위원
1947년 12월 미국 벨연구소의 존 바딘과 월터 브래튼이 게르마늄 결정 위에 금속 접점을 얹어 전기신호를 증폭시킨 순간 인류의 시간축은 ‘전자공학’이라는 새로운 궤도로 진입했다. 기존 진공관을 대체하는 트랜지스터의 탄생이자 컴퓨터·스마트폰·인터넷의 씨앗이 된 반도체의 서막이었다. 다급해진 소련은 정보기관인 KGB를 총동원해 미국 기술의 복제에 매달렸다. 반도체 기술 유출의 시작이었다.
대만 법원이 27일 TSMC의 2나노 공정 핵심기술을 빼돌린 전 직원 천리밍에게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일본 반도체 장비 업체 도쿄일렉트론으로 이직한 그는 전직 동료들을 통해 첨단 공정 도면과 내부 자료를 휴대폰으로 빼돌렸다. 대만 사법 당국이 국가보안법상 ‘국가핵심기술’ 조항을 적용해 본보기 처벌에 나선 첫 사례라는 점에서 무게가 남다르다. 대만 검찰은 “반도체 산업 보호 의지를 반영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국내에서도 지난주 서울고법이 반도체 기술을 중국에 넘긴 전직 삼성전자 부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6년 4개월형을 확정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기술 유출 범죄 검거 건수는 179건으로 전년보다 45% 급증했다. 반도체가 41건으로 가장 많았고 해외 유출 사건도 105건에 달했다. 하지만 국내 산업기술 유출 사범 두 명 중 한 명꼴로 집행유예가 선고된다. 기업은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개발한 기술을 잃는데 처벌이 약하면 누가 법을 두려워하겠는가. 올해 2월 간첩법 개정으로 적용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넓히고 기술유출 처벌 강화 규정이 9월 시행된다지만 법원이 얼마나 엄단 의지를 보일지 두고 볼 일이다.
기술은 일단 유출되면 되돌릴 길이 없다. 처벌 못지않게 기업 내부 종사자들부터 조심하는 게 먼저다. 영업이익 대박을 낸 삼성전자의 노조원들이 성과급을 더 달라고 파업에 나선다고 한다. 반도체가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고 하는데 과연 기술 보호에는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