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동계에서 정부의 암묵지 기반 인공지능(AI) 사업 추진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수십 년 넘게 노동자가 쌓은 숙련과 경험인 ‘암묵지’를 제대로 된 보상 없이 AI와 공유하면 안 된다는 단순한 불만을 넘어선다. 숙련을 AI에 내준 노동자가 더 이상 현장에서 버틸 수 없게 된다는 생존의 문제가 핵심이다. AI가 노동자의 고유한 숙련마저 대체한다면, 종국에는 AI로 대체되지 않을 일자리가 사실상 사라지기 때문이다.
26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논평을 내고 산업통상자원부의 ‘제조암묵지기반 AI모델개발사업’ 신규지원 대상과제 공고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현 정부의 주요 노동정책 파트너인 한국노총은 AI 개발을 통해 제조업 위기를 극복하고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사업 취지 자체에는 공감했다. 그러나 노동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정부의 정책 방향이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됐다며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단순한 기술개발을 넘어 제조 명장의 경험과 직관, 판단을 데이터로 전환해 AI가 대체하고 재현하려는 사업”이라며 “노동의 성격과 현장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숙련의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할지, 암묵지의 AI 모델 확산이 미칠 고용 충격은 어느 정도일지, 이 AI 모델의 책임 주체는 누구인지 등 핵심 쟁점들을 사회적 대화로 풀어내는 과정이 선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암묵지의 AI화가 불러올 노동시장의 악영향은 ‘이윤의 독점’과 ‘일자리 소멸’로 요약할 수 있다. 타인의 경험과 숙련을 아무런 보상 없이 AI의 학습 도구로 쓸 수 있느냐는 근본적 질문이다. 한국노총은 “막대한 데이터를 축적한 사업 수행 기업이 이 성과를 독점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며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특정인의 숙련과 경험으로 기업의 생산성이 올랐을 때, 그 성과를 해당 노동자에게 보상할지 사회와 배분할지에 대한 어떠한 기준도 없다”고 비판했다.
고용 불안을 넘어 일자리 소멸이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도 짙다. 제조 암묵지가 AI로 넘어가는 순간, 기업 입장에선 값비싼 고숙련 노동자를 유지할 유인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미 제조업 현장은 현대차그룹의 ‘아틀라스’처럼 휴머노이드 로봇이 제조 공정에 투입될 가능성을 목격하며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이미 지난해 제조업 취업자는 7만 3,000여 명이나 줄면서 전체 취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2%로 내려앉았다. 이는 2013년 이후 최저치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암묵지의 AI화는 노조조차 없는 중소 제조공장의 타격이 더 클 것”이라며 “방어막 없이 속절없이 데이터와 일자리를 뺏기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암묵지의 AI화가 당초 목적인 생산성 향상과 정반대의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장에서 숙련을 AI에 뺏길 것을 우려한 노동자들이 최선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는 ‘은밀한 태업’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도제식으로 이어지던 숙련의 전수 과정도 AI라는 매개체로 인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결국 숙련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촉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노사 갈등이 분출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사·정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최근 ‘AI 시대의 노동’을 공식 대화 의제로 삼았다. 한국노총은 경사노위 테이블에서 암묵지의 AI화 문제도 반드시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은 “숙련의 축적 주체인 노동자를 배제한 채 성과만을 산업 정책의 자원으로 활용한다면 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고착화될 것”이라며 “정부가 노동계의 문제 제기를 외면하고 사업을 강행해선 안 된다”고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