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앞에서 “나이 들면 어쩔 수 없다”는 체념 만큼 자주 나오는 말이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치매를 노화의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50~60대 이후 식습관을 바꾸면 뇌 건강이 실제로 달라질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도 쌓이는 추세다.
최근 국제학술지 ‘신경학(Neurology)’에는 식물성 식품 위주의 식단을 유지할 경우 치매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 논문이 실렸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평균 연령 59세인 성인 약 9만 3000명을 10년간 추적한 결과, 식물성 식품 위주의 식단을 유지한 그룹의 치매 발생 위험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치매 위험이 약 11% 가량 낮았다.
특히 통곡물과 견과류, 콩류, 과일 및 채소 등으로 구성된 고품질 식물성 식단의 효과가 뚜렷했다. 고품질 식물성 식단을 가장 많이 섭취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치매 위험이 7%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품질 식물성 식단은 섬유질이 풍부해 혈당 상승을 완만하게 만들고, 항산화 작용을 통해 뇌 건강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식단 관리와 더불어 한약 처방을 병행하면 뇌 신경세포 자체를 보호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전통 한약인 ‘육공단’이다. 자생한방병원 척추관절연구소가 국제학술지 ‘생물학(Biology)’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육공단이 해마 신경세포를 보호하고, 치매의 핵심 원인인 타우 단백질 변형을 억제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마는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핵심 기관으로 치매가 진행될수록 가장 먼저 손상되는 부위다. 육공단의 ‘올레아놀산’이라는 성분은 타우 단백질 변형을 유발하는 ‘GSK3β’ 효소의 활성을 차단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타우 단백질은 평상시 신경세포 구조를 유지하지만, 과도하게 변형될 경우 뇌세포 구조를 파괴하는 독성 물질로 변한다.
최근 이 같은 연구들이 주목 받는 이유는 고령화가 가속화되며 치매 환자 수가 계속 증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국민관심질병통계에 따르면 국내 치매 환자 수는 2020년 56만 7433명에서 2024년 70만 9620명으로 4년 만에 약 25% 증가했다. 치매의 전 단계로 불리는 경도인지장애 환자도 같은 기간 27만 7245명에서 33만 2464명으로 약 20% 늘었다. 두 질환을 합치면 이미 100만 명이 넘는다.
앞서 소개한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건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50~60대 이후에 식단 관리를 해도 치매 위험이 줄어들 뿐 아니라, 한약 처방을 통해 손상된 신경세포 회복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뇌는 나이와 상관없이 변화에 응답한다. 오늘의 작은 선택이 10년 뒤 기억을 지키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