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송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21일 취임식에서 “중동 전쟁에 따른 공급 충격으로 물가와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한층 커졌다”며 “신중하고 유연한 통화정책 운영을 통해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을 도모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인구구조 변화, 양극화 심화, 부동산 시장과 가계부채 문제로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이 약화되고 있다”며 이런 구조적 요인들을 통화정책의 중요한 일부로 보고 대응할 뜻도 내비쳤다.
신 총재는 취임사에서 ‘물가(4차례)’보다 ‘성장(6차례)’을 더 많이 언급했다. 물가 방어가 주요 업무인 한은이 우려할 만큼 경제의 성장 부진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 저성장 문제는 전날 이창용 전임 한은 총재의 이임사에도 등장했을 만큼 심상치 않다. 이 전 총재는 “저출생과 저성장 문제 등은 단기 처방보다는 구조 개혁을 통해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의 기준금리 결정(통화정책)과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등 재정정책은 ‘단기 처방’에 불과하며 이것만으로는 추락하는 우리 경제의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힘들다고 경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동발 고유가·고물가·고환율의 ‘3고(高)’ 현상이 뉴노멀로 굳어질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스태그플레이션 먹구름도 짙어지고 있다. 이란 전쟁의 장기화로 복합 위기 파도가 몰아치면 정부와 한은이 각각 내세운 올해 2.0% 성장 목표 달성이 무산될 우려가 크다.
‘성장’과 ‘물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은 쉽지 않은 과제다. 그래도 성장 동력 회복을 위해서는 구조 개혁에 박차를 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는 규제 혁신과 노동 개혁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첨단 미래 산업을 위한 세제와 보조금 혜택 등으로 경제구조를 질적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한은도 우리 경제의 구조적 요인에 대한 나름의 역할이 필요하다. 물론 정치의 입김이 센 우리 현실에서 한은이 강단 있는 태도를 견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신 총재가 정부 정책과 긴밀히 호흡을 맞추되 구조 개혁이 지속 가능한 성장의 전제라는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