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동의 복합 문화 공간 ‘하우스 노웨어 서울’ 1층. 미래를 앞당겨 놓은 듯한 공간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최근에는 대형 미키마우스 구조물과 은색 F1(포뮬러1) 레이싱카가 어우러진 ‘디즈니 FXI 서킷 컬렉션’ 전시가 펼쳐지고 있다.
전시장에 놓인 증강현실(AR) 글라스를 착용하면 실제 레이서들이 주행 중 자동차 계기판을 확인하는 대신 안경 렌즈 위에 실시간 투사되는 가상의 서킷 경로와 차량 데이터, 타이어 상태 등을 확인하며 시속 300㎞를 돌파하는 상상이 현실로 다가온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 중 AR 글라스를 정식 출시한 곳은 아직까지 한 곳도 없다. 엑스리얼 등 중국 기업들과 미국 메타 등이 사실상 무주공산인 국내시장을 선점할 태세다.
산업계는 스마트글라스 시장이 열리지 못하는 근본 원인으로 낡은 규제를 꼽는다. 산업연구원의 전문가 인식조사 결과 주요국의 정책·규제 환경 점수에서 미국과 중국이 각각 92점인 데 비해 한국은 73.5점에 그쳤다. 반도체와 배터리·디스플레이 등 하드웨어 핵심 기술과 세계적 디자인 역량까지 갖췄지만 정작 제품을 내놓지 못하는 규제의 역설에 빠진 것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걸어다니는 CCTV’로 불리는 스마트글라스의 개인정보 침해 우려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상 공공장소에서 영상 수집 및 활용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기업들은 법적 리스크를 안고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여기에 실감형 영상에 대한 등급 체계 분류 기준의 모호성과 가상현실(VR) 영화관 육성을 막는 공간 규제도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사생활 보호 규정을 명확히 하고 영상 등급 분류 체계를 빠르게 정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정부의 ‘가상·증강현실(VR·AR) 규제 혁신 로드맵’은 2020년 발표된 후 6년째 멈춰 서 있다. 2022년 정부가 ‘정보통신기술(ICT) 규제 완화 및 메타버스 국가 지원 체계 마련’을 공언했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규제 완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실제로 정부의 디지털 콘텐츠 산업 육성 예산 중 디바이스 기술 개발에 배정된 비중은 5.6%에 불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