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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메르 루주의 프놈펜 입성

15.04.2026

남베트남이 패망하기 직전인 1975년 4월 17일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크메르루주가 입성했다. ‘붉은 크메르’를 뜻하는 캄보디아 공산당 휘하의 이 무장 군사 조직이 통치한 향후 5년간 전체 인구 700만 명 가운데 최소 15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동족과 이민족을 가리지 않고 자행된 살인의 동기는 복합적이었다. 이데올로기적 광신, 인간에 대한 증오,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큰 이유였다. 크메르루주 지도자들은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이념을 추종하면서 폐쇄적 성격의 농업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 했다. 외부 세계와의 완전한 단절을 도모하는 가운데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무차별 살해됐다. 도시 인구를 농촌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저항하는 사람에게는 고문과 학살이 가해졌다. 오랫동안 존중받아온 불교 승려들도 무위도식하는 자로 몰려 살해됐다. 중국계와 베트남계, 이슬람교도인 참족 주민들도 학살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데올로기의 과잉 속에서 농업 정책마저 실패로 돌아가면서 기아와 질병이 만연했다. 끝이 없을 것만 같던 이 비극은 1979년 베트남 군대의 침공으로 크메르루주가 실각함으로써 종식됐다. 2만 개가 넘는 집단 매장지가 발굴되면서 사람들은 캄보디아 땅에서 자행된 원시적 학살에 ‘킬링필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참극의 원인을 ‘주민 정화’를 표방한 크메르루주 지도부에서만 찾는 것은 너무 몰역사적이다. 100년 가까운 프랑스의 식민 지배, 일본의 군사적 점령, 베트남과의 영토 분쟁을 통해 폭력이 일상화되지 않았다면 킬링필드는 없었을지 모른다. 베트남과의 접경 지역에 대한 미군의 네이팜탄 폭격이 아니었다면 그 공습으로 부모를 잃은 청소년들이 살인 기계로 전락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캄보디아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는 식민의 폭력과 탈식민의 혼란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세계사적 비극이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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