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음악 앞에서는 시간조차 차분해진다. 마음이 어지러울수록 어떤 곡은 더 또렷하게 다가온다. 화려한 감정 대신 질서와 이성을 내세우는 음악, 골드베르크 변주곡(BWV 988)은 그 대표적인 예다. 단순한 건반곡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각과 세계를 구조적으로 세운 기념비적 작품이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아리아와 30개의 변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동일한 저음 진행을 기반으로 삼는다. 즉, 선율이 아닌 ‘구조’가 변주를 이끄는 방식이다. 바흐는 하나의 바탕선을 두고 30가지의 언어를 쌓아 올리며 음악이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의 끝을 밀어붙였다. 각 변주는 정교한 카논 기법, 춤곡 양식, 기악 스타일 등을 오가며 연주자의 기술과 해석을 시험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처음의 아리아로 되돌아오며 긴 여정을 매듭짓는다. 삶의 궤적처럼, 상승과 순환, 그리고 귀환이 있다.
이 작품에는 한 가지 유명한 에피소드가 따라붙는다. 러시아 출신 귀족 카이저링크 백작이 불면증으로 괴로워하자, 바흐에게 잠 못 이루는 밤을 달랠 수 있는 음악을 부탁했다는 이야기다. 그 곡을 연주한 이는 바흐의 제자였던 천재 하프시코드 주자 요한 고트리프 골드베르크. 이후 작품 제목이 그의 이름을 따르게 됐다는 설이다. 다만 문헌적 근거는 불완전하고, 현재 학계는 ‘후대에 더해진 미화’ 정도로 본다. 그러나 이 일화는 작품의 성격과 묘하게 어울린다. 지나치게 감정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지닌 매력이다.
후대의 재탄생도 흥미롭다. 1955년 글렌 굴드가 데뷔 음반으로 이 작품을 선택해 전 세계 클래식 시장을 뒤흔들었다. 빠른 템포, 또렷한 아티큘레이션, 시종일관 절제된 감정 표현은 젊은 피아니스트의 급진적인 선언이었다. 당시 하프시코드를 위한 작품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고, 그 실험이 대중적 ‘걸작’의 지위를 부여했다. 이후 수많은 연주자가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 건반 음악의 중심에 서 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잔잔하고, 질서정연하며, 속을 들여다보는 음악이다. 감정을 자극하기보다는 마음의 균형을 되찾게 한다. 바흐가 음악에 담은 것은 기교가 아니라 사유에 가깝다. 그리고 좋은 음악이 그렇듯, 들을수록 여백이 생긴다. 듣는 이의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깊이가 열린다.
하루가 복잡하고 마음이 산만해질 때, 처음의 아리아로 돌아오듯 다시 숨을 고르게 되는 순간이 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그런 순간에 가장 가까운 건반 위의 위로다. 일상의 속도가 균형을 잃을 때, 이 음악은 여전히 조용히 발걸음을 맞춰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