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을 위대한 스승이라는 말이 있다. 자연은 여유이고 쉼터다. 우리나라 전 국토에서 산이 차지하는 면적이 약 63%라고 한다. 또한 매주 등산하는 사람이 200만 명이 넘으며, 한 달에 한 번 이상 산을 찾는 인구가 1,000만 명이라 자료가 있다.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수치다. 전국적으로 걷기 열풍이다. 100세 시대를 맞아 건강을 위해 걷는 동호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등산과 걷기가 보편화되면서 더욱 인기 있는 스포츠로 주목받고 있다.
높고 낮은 산에 관계없이 산을 찾을 때는 최소한의 장비는 필수다. 특히 겨울 산행은 더욱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설 연휴 동안 겪었던 겨울 산행의 경험담을 소개한다. 설 연휴 중 3일간을 양평에 있는 산들을 답사했다. 산행을 목적으로 한 답사가 아니었기에 사전 준비 없이 떠난 것이 화근이 됐다. 겨울 산행의 위험요소를 간과하지 않은 자만이었다. 눈과 얼음은 예상치 못한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겨울산행에서 등산화를 비롯한 아이젠과 스틱, 보온 옷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소개한다.
평상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전철을 이용하여 용산역에서 경의중앙선으로 환승을 했다. 서울-구리를 지나 양평군 양서면에 있는 국수菊秀역에 내렸다. 국수역에서 접근할 수 있는 양평 청계산 658m을 답사하기 위해서다. 국수역은 1939년 중앙선 개통과 함께 영업을 개시한 역으로 현재의 역사는 2008년에 준공된 역사다. 국수역 지나칠 때마다 왜 국수역일까? 그 역사 이름이 궁금했다. 그동안 이름을 보면서 먹는 국수를 떠 올리기도 하고 국화꽃을 연상하기도 했다.
국수역 이름 유래는 국수역 앞에 있는 청계산 옛 이름이 국수산이었다고 한다. 국수산 이름을 따서 부르고 있는 이름 유래라고 설명한다. 국수역에서 하차하여 왼쪽에 경의중앙선 터널을 통과하면 청계산으로 가는 들머리다. 마을 골목길을 따라 산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음지의 골목길은 빙판길로 매우 미끄럽다. 뚜렷한 이정표가 없지만 등산로 길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청계산 들머리에는 꽤 넓은 주차장에 현대식 화장실도 있다. 주차장에서 행사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주변 일대가 묘지다. 주차장에서 한참 갈등에 빠졌다. 산을 오를 것인가? 아니면 뒤돌아 설 것인가? 발길은 어느새 산으로 향하고 있다.
청계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다. 산속으로 진입할수록 차가운 겨울날씨에 상쾌한 느낌이다. 고민과 갈등 속에 하얀 눈길을 따라 산 정상을 향해 오르는데 울창한 소나무 숲이 하얀 눈과 이채롭다. 전원주택 단지 뒤로 공동묘지가 있다. 설 연휴를 맞아 마을 뒷산에는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 다닌다. 연휴를 맞아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다. 서울과 포천, 충주에 있는 청계산은 가 보았다. 하지만 양평 청계산은 초행길이다. 이 청계산은 어떤 산일까? 어떤 아름다운 전망을 안고 있는 산일까? 궁금하여 눈길의 위험을 무릅쓰고 정상을 향해 올랐다.
청계산 등산로 초입의 길을 선명하게 보인다. 산행하는 동호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지나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즐겁고 건강한 산행 되십시오. 설 연휴 기간 중에 산행에서 볼 수 있는 등산객들의 정초 인사다. 산행을 하다가 서로 마주칠 때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응원을 한다. 산에서 배려하는 마음은 산이 안겨주는 또다른 미풍양속이다. 양평 청계산은 양평 양서면과 서종면을 경계로 우뚝 솟아 있는 산이다. 산행하는데 바람이 불지 않아 춥지는 않다. 눈길이라 매우 미끄럽다. 정상을 향해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발길을 내디딘다.
청계산 등산로 길에 철망이 처져 있다. 왠 철망일까? 출입할 수 있도록 두 곳의 입구와 출구가 있다. 출입문에는 자물쇠도 걸려 있다. 궁금하다. 약수터에서 물을 마신 후 쉼을 가진 분들에게 이 철망에 관해 여쭈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을 막기 위해 설치한 시설물이라 한다. 궁금증을 해소하고 너덜지대를 지나는데 굵직한 소나무들이 쓰러지고 찢어져 있다. 태풍 같은 비바람에 훼손된 아름드리나무들이다. 정상을 향한 발걸음은 더디다. 그냥 하산할까? 고민하다 또 걷는다. 나뭇가지에 맺은 상고대가 아름답다.
정상으로 향한 눈길은 무릎까지 빠진다. 육산이라지만 비탈진 길은 미끄럽다. 나뭇가지를 주어 스틱 삼아 걷는다. 입가에 웃음이 나온다. 준비 없는 눈길에서 볼 수 있는 난센스다. 이래서 겨울 산행에서 조난 사고가 일어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자만과 과신에서 오는 안전 불감증이다. 등산 시 안전사고는 계절마다 다르겠지만 특히 겨울철 안전산행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겨울 산행의 매력은 설경이다. 차갑고 매서운 바람은 영하 10도 이상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보온과 신발, 모자, 장갑 등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오늘처럼 무모하게 무턱대고 나섰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는 겨울산행 한 사례다. 산행은 철저하게 준비하여 즐겁고 건강하게 등산을 해야 한다. 사전 준비없이 나선 자신을 격려하고 위로한다. 눈 덮인 형제봉 능선이 건너편에 보인다. 잠시 능선을 주시하면서 동서남북을 살피는데 양수리 두물머리와 남한강이 보인다. 오른쪽에는 북한강도 보인다. 예봉산 683m과 적갑산 561m, 운길산610m 등 주변의 산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운길산 기슭에 있는 고찰 수종사가 보이는데 설경이 장관이다.
형제봉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길에는 인적이 뜸해 발자국이 없어 혼자 산행을 한다. 리본과 느낌으로 길을 만들어 걷는다. 형제봉이 보이는데 가파른 길이다. 청계산은 흙산으로 힘들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겨울 장비가 없어 걷는 데 체력소모가 많다. 간식도 준비하지 않아 낭패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형제봉에 도착이다. 장관이다. 유일하게 바위가 있는 형제봉이다. 멀지 않는 곳에 양평의 금강산 용문산과 백운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능선으로 그 풍광이 어느 능선보다 장관이다. 정상에 있는 태극기 밑에는 악어 한 마리가 있는데 왜일까? 형제봉에서 부용산을 거쳐 양수역까지 하산하는 코스가 있다.
형제봉 건너편에 청계산 정상이 보인다. 잠시 쉼을 가지면서 산행길을 점검해 본다. 이미 신발과 양말은 엉망진창이다.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자신이 책임을 지고 가야 한다. 청계산 정상은 다음에 찾는 것으로 결정하고 정상 안부에서 청계리로 하산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발자국이 없는 구간을 걸어 안부에 도착이다. 청계리로 내려가는 코스와 신원역으로 내려가는 코스가 있다. 청계리 방향의 내리막길로 하산이다. 어쩔 수 없이 넘어지고 썰매를 타면서 하산길을 찾는다. 비료 포대가 생각난다. 눈 속에서 가끔 나부끼는 리본을 찾아 50년의 산쟁이 경험으로 길을 찾아 나서는 사투다. 하산길이다.
눈속에 리본이 가끔 종적을 감추고 보이지 않는다. 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기도 한다. 지형과 계곡 그리고 마을 방향으로 길을 찾아 걷는다. 황당한 모습에서 처량함이 엿보인다. 1시간여 악전고투 끝에 마을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 가끔 멧돼지 같은 커다란 동물 발자국이 보인다. 산골 전원 마을에 들어서는데 호랑이 같은 견 한 마리가 우렁차게 짖는다. 마치 묶어놓은 밧줄을 끊고 달려들 태세다. 전원주택 단지 마을을 시끌벅적하게 한다. 수도권 제2순환도로가 보인다. 청계2리 에덴 계곡이다. 자연산 고둘빼기 정보화마을도 있다.
질퍽거리는 신발을 털어 가면서 국수역 방향으로 흐르는 북포천의 도착이다. 역시 양평은 산이 많고 하천이 많은 고장이다. 조용한 산골 마을 버스정류장에 앉아 잠시 쉼을 가진다. 청계산을 되돌아본다. 50년의 산행에서 가장 힘들었던 산행이었다. 산을 찾을 때 사전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확인한 답사였다. 버스 정류장을 나와 북포천을 따라 국수역을 향해 걷는다. 여기저기서 개들 짖는 울음소리가 우렁차다. 눈에 젖어 있는 모습이 걸인처럼 남달라 보이나 싶다.
마을 길을 돌고 돌아 국수역에 도착했다. 원점회귀 산행이 됐다. 전철역 앞 가게를 찾아 신발이나 양말을 찾는데 가게가 없다. 당황스럽다. 동상이 걸리나 싶어 걱정이지만 영상의 날씨라 큰 염려는 하지 않는다. 카페에 앉아 신발을 풀고 발을 좀 말린다. 전철의 뜨거운 칸을 찾아 몸을 기대며 신발을 벗어 의자 밑으로 놓았다. 염치 불고하고 젖은 발도 의자 밑으로 밀어 넣어 말린다. 그 꼴이 우습기도 하고 청량하기 그지없다. 두 번 다시 이런 오기나 실수는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산 경험을 하게 한 청계산 답사였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양평을 찾았다. 둘째날은 눈이 펑펑 쏟아진 백운봉 940m 답사였다. 백운봉을 가리켜 한국의 마터호른 4,478m이라 부른다. 그만큼 가파른 용문산 봉우리다. 양평역에서 백운봉 자연휴양림에 있는 용문산령 제단을 찾는 길이다. 제단은 매우 위엄이 있어 보인다. 이틀 동안 찾은 결과물이라 가슴 벅찬다. 3일째 날도 양평은 눈길이다. 용문사 입구에 있는 공원에서 또 하나의 장소를 찾았다. 행사일 날씨에 따라 장소를 선택할 것이다. 추억을 안겨 준 3일간의 양평 답사였다. 조선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 선생의 ‘길이 있는 곳이면 어떠한 곳도 찾았다’라는 말로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