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을사년 새해를 맞아 심신을 정갈하게 하려고 따뜻한 남도의 유명한 사찰 네 곳을 찾았다. 유명 사찰을 순례하면서 마음의 번뇌를 없애고 속세에서 만나는 무수한 인연을 생각해 보는 일정이다. 지혜를 얻는 깨달음의 길이다. 매년 불가에서는 정초나 윤달을 맞으면 사찰 세 곳을 돌면서 삼사 순례를 한다. 삼독(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없애기 위한 행위라고 한다. 어느 법전에 집착하면 탐욕이 생기고 탐욕이 생기면 생로병사와 근심, 슬픔, 괴로움 같은 번뇌가 뒤따른다고 한다.
불자들은 순례를 통해 소홀했던 자기 수행과 이웃을 위한 보시행 등 공덕을 쌓고자 한다. 유서 깊은 고찰을 찾아 행복한 삶을 살기 영위하기 위해 순례를 한다고 한다. 불자는 아니더라도 조용한 산길에서 절에 들어가 묵례를 하고 물 한잔을 마시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쉼을 갖을 수 있다는 좋은 기억이 있다. 이번 고찰 순례는 경상남도 양산 천성산 자락에 있는 내원사와 부산 금정산의 범어사, 검푸른 바닷가 명승지의 해동 용궁사, 그리고 경상북도 청도 운문(호거)산에 있는 운문사다.
먼저 경상남도 양산에 있는 천년고찰 내원사를 답사했다. 내원사는 통도사 말사다. 내원사로 들어가는 계곡 6km는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겨울에도 흐르는 물소리가 청량하게 들리는 아름다운 계곡이다. 천성산을 제2의 금강산이라 부르고 있다. 내원사는 1,300여 년 전 신라 원효대사가 창건하신 절이라고 한다. 창건 당시 유명한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명찰임을 자랑한다. 내원사는 기도 도량으로 동국제일선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계곡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주차장에서 세전교를 지나면 내원사 삼신각이 있다. 대웅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삼신각이 있어 신비스러움의 감동이다.
세전교에서 내원사로 들어가는 여의교까지 길목에는 한 번쯤 가슴에 새겨 두어야 할 부처님의 말씀을 새겨놓은 비석들이 서있다. 괴로움은 욕망 때문에 일어나고 지혜 때문에 사라진다. 걷던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읽어본다. 번민이다. 비우고 내려놓으라는 의미다. 여의교를 건너면 조용한 내원사가 자리 잡고 있는데 큰 대궐집 정원 같은 분위기의 사찰 모습이다. 내원사는 비구니 스님들이 정진하고 있는 기도 도량이다. 내원사 경내를 돌아보는데도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내 걷는다.
천성산은 부산 등 인근 시민들이 사계절 내내 등산을 즐기는 명산이다. 내원사 계곡은 한여름 더위를 피해 즐기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유명한 계곡이다. 내원사에서 잠시 무거운 심신을 내려놓은 후 부산 금정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범어사를 찾았다. 범어사로 가는 길에서 통도사를 안고 있는 신불산과 영취산의 영남알프스 산맥이 장관이다. 하얀 능선은 갈색의 억새 물결이 알프스를 연상하게 하면서 오라고 손짓한다. 영남알프스(영취산-신불산-간월산-가지산-고헌산-운문산-재약산-천황산)의 고봉을 수없이 걸었던 그때의 추억이 아련하다.
부산 금정산에 있는 범어사에 도착이다. 범어사 주차장 등 입구가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이다. 무상한 세월의 흐름을 인식하게 한다. 금정산은 부산의 진산으로 부산항은 물론 시내를 안고 있는 산이다. 동래 산성이 있으며 금정산 정상에는 고담봉이라는 웅장한 바위가 있다. 고담봉 암반에는 마르지 않는 샘이 있는데 이 샘을 금샘이라 부른다. 물이 마르지 않는 사실이 신비스러운 샘이다. 부산을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금정산 종주 산행이 매력이 있고 동래산성에서 먹었던 염소고기와 산성막걸리는 잊을 수 없는 부산의 대표적인 맛이다.
금정산 동쪽에 있는 범어사는 합천 해인사와 양산 통도사와 더불어 영남을 대표하는 3대 사찰이다. 대한 불교 8대 총람 중 선찰대본산 금정총림이라고 한다. 8대 총람은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 동화사, 쌍계사, 범어사 등을 말한다. 범어사는 신라 문무왕 18년(678) 의상대사가 해동의 화엄십찰(華嚴十刹) 중 하나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범어사는 역사적으로 많은 고승대덕을 길러내고 선승을 배출한 오랜 전통과 문화재가 많은 고찰이라고 한다. 범어사는 시내에서 멀지 않아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범어사 창건 당시 의상대사와 신라 문무왕과의 얽힌 설화가 있다. 8대 총람 범어사는 불교 역사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고찰로 많은 고승이 수행하고 정진한 사찰로서 웅장한 모습의 명찰이라고 한다. 범어사 경내를 둘러보는데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눈으로 보아야 하고 읽어 봐야 하는 전각과 문화재들이 많다. 수백 년 된 보호수 은행나무에서 금정산 산행길을 따라 옛 생각을 떠올려 본다. 산행 들머리 길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역시 금정산은 추억의 발길이 있는 산으로 조만간 금정산 종주를 생각해 본다.
화엄경의 이상향을 안고 있는 맑고 청정한 범어사를 뒤로하고 30분 거리에 있는 부산 기장 바닷가로 향했다. 기장은 해운대와 맞닿아 있는 아름다운 해변이다. 작은 어촌 마을의 불과했던 엣날 기억 속의 기장 모습이 아니다. 아름다운 동해 해변에는 기암괴석이 많다. 그 바위 자락에 자리 잡은 해동용궁사를 찾았다. 해동용궁사로 가는 도로는 정체다.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특히 외국 관광객의 모습이 많다. 검푸른 동해가 망망대해다. 파도가 없는 바다가 있을까? 검푸른 파도가 바위와 부딪치면서 하얀 물거품을 연출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우리나라 대부분 사찰은 산 중 깊숙한 곳에 있다. 해동 용궁사는 이와 달리 푸른 바닷물이 철썩대는 곳에 있다. 용궁사에 들어가면 하얀 관세음보살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한의 자비로 바닷가 외로운 곳에 상주하면서 용을 타고 헌신하신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와 경상남도 남해 보리암 등과 같이 해동용궁사로 삼대 관음 성지라고 한다. 해동 용궁사는 고려 우왕 2년(1376) 나옹화상(1320~1376)이 지금의 배산임수 자리에 창건했다고 한다.
해동용궁사는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3대 관음도량이다. 기도 도량 해동용궁사는 관광객과 참배객이 줄을 잇고 있다. 춘원 이광수는 바다와 산이 한곳에 머물러 있으니 청풍명월이요, 선경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해동용궁사는 바다와 용이 관음대불을 이루고 있어 진심으로 기도를 하면 누구나 한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사찰이라고 한다. 용궁사도 많은 전각이 들어서 있으며 웅장한 모습의 놀래지 않을 수 없다. 해동용궁사는 해파랑길 2코스(해운대-송정-용궁사-대변항 16km)에 있다.
용궁사 대웅전은 최근에 중창한 건물로 고즈넉한 멋은 없지만 웅장하다. 굴법당도 있는데 득남할 수 있다 하여 자손이 귀한 분들이 찾는다고 한다. 용궁사에는 국내 최대의 약사여래불(높이 10m)이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해동용궁사에서 바닷길(해파랑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세상 근심·걱정이 사라지는 아름다운 길이다. 파도 소리가 마치 불경을 읽고 있는 불자들의 음성처럼 들린다. 해동용궁사를 찾아오는 그 행위 자체가 깨달음이라 한다.
부산 기장 해동용궁사를 출발하여 해운대와 광안리 바다를 바라다보면서 경상북도 청도로 향한다. 청도 운문면 운문산(호거산)자락에 아늑하고 평화스럽게 보이는 땅에 정갈한 운문사가 있다.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21년(560)에 신승이 창건했다는 고찰이다. 신라 화랑도의 세속 오계 정신 발원지라고 한다. 세속 오계는 신라 진평왕 22년 운문사 주지 원광이 귀산과 추항에게 세속 오계를 작성하였다고 한다. 운문사에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 청규가 있는 명찰이다.
운문 雲門이라는 그 이름 자체가 몽환적이고 신비스러운 단어의 의미다. 1987년부터 운문사 승가대학에서는 수많은 비구니 승들을 배출한 사찰로 유명하다. 올해가 제 61회 졸업생을 수료시키는데 그동안 수천명의 비구니 스님들을 배출하였다고 한다. 운문사는 호거산 계곡 평지에 있는 사찰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 운문사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하다. 소나무에는 V자 모양의 상처가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의 만행 흔적을 운문사 솔숲에서도 볼 수 있다.
고찰 운문사 대웅전 앞에는 천연기념물 제108호 처진 소나무(수령 500년)와 거북바위의 위엄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자태이다. 또한, 출입금지 구역에 있는 은행나무와 함께 운문사의 소중한 보물이라고 한다. 임진왜란과 6.25 전쟁 때에도 사찰 내 건물들은 소실되었으나 이 소나무는 재앙을 면하였다는 신비스러운 나무다. 매년 봄이 되면 12말의 막걸리와 물을 뿌려준다고 한다. 운문사에서 고려 시대 일연선사가 주지로 있으면서 삼국유사 집필을 시작한 절이 운문사라고 한다.
비구니 사찰 운문사에는 대웅전이 2개가 있다. 대웅전은 자비스러운 배가 고해의 바다를 건너는 중생들을 깨달음의 세계로 실어다 준다는 의미라고 한다. 1994년에 신축한 대웅전은 만세루 앞에 있는데 그 크기가 매우 웅장하지만 왜 두 개의 대웅전이 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대웅전 뒤에는 화랑도의 세속 오계(사군이충, 사친이효, 교우이신, 임전무퇴, 살생유택) 비가 서있다. 세속 오계 비 앞에서 산을 바라다보면 큰 바위 밑에 암자 하나가 보인다. 북대암이다.
운문사에는 짙푸른 솔숲에 솔바람길이 있다. 아픈 과거를 씻어주는 길이라 한다. 운문사에는 사리암, 북대암, 내원암, 청신암, 호거암이 있다. 그중에 사리암은 꼭 가봐야 할 암자다. 사라암 가는 길 표지석에 ‘아스라이 높은 듯한 그곳 님 향한 꼬불꼬불 돌계단 산허리 감은 용구름 운무 1008개 돌계단을 고개 숙여 하심으로 오르라네 나반존자님의 향기 속에 인연 맺은 중생들 님 계신 천태각 24돌 계단을 끈 놓고 오라하네’라고 적어 있다. 녹음이 짙어지고 꽃피는 어느 날 사리암을 찾아올 것을 생각하며 새해를 맞아 실시한 순례길을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