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전세금 2억 원을 은행에서 연 4%로 빌리면 단순 계산으로 1년 이자만 800만 원을 내야한다. 부모가 같은 돈을 이자 없이 빌려주면 어떻게 될까. 차용으로 인정되면 이자 혜택에 증여세가 붙지 않는다. 하지만 차용증만 써두고 약속대로 갚지 않아 증여로 판단되면 기본공제 5000만 원을 적용해도 증여세만 2000만 원에 달한다.
박정훈 신한프리미어패스파인더 세무위원은 “제3자도 알 수 있을 만한 객관적 증빙을 만들어 두는 게 좋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자료를 갖춰도 세무당국은 거래 경위와 실제 상환 내역에 따라 증여로 판단할 수 있다. 박 위원 역시 “소명 부담과 세금을 따져보면 처음부터 증여 신고가 나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2억 원 무이자’ 가능한 이유
부모가 자녀에게 돈을 무이자로 빌려주면 세법은 연 4.6%를 기준으로 자녀가 얻는 이자 혜택을 계산한다. 2억 원을 1년간 무이자로 빌렸다면 이자 혜택은 920만 원이다. 이 금액이 1000만 원 미만이면 과세 기준에 못 미쳐 증여세가 붙지 않는다. ‘무이자 약 2억 1700만 원’은 이 기준을 원금으로 역산한 수치다.
원금 2억 원 전부가 증여로 판단되면 계산은 달라진다. 성인 자녀가 최근 10년간 부모나 조부모 등 직계존속에게 증여받은 재산이 없다면 2억 원에서 기본공제 5000만 원을 뺀 1억 5000만 원이 과세표준이다. 여기에 세율 20%를 적용하고 누진공제 1000만 원을 빼면 증여세는 2000만 원이다. 혼인·출산 추가공제는 적용하지 않은 경우다.
차용증 작성 시 유의사항은
차용증은 부모가 돈을 보내기 전에 작성하는 게 좋다. 부모와 자녀의 인적 사항, 빌려주는 금액, 이자율, 상환일과 상환 방법을 적고 작성일을 명시한 뒤 양쪽이 서명하거나 날인한다. 무이자로 빌려주기로 했다면 이자율은 0%로 적는다. 박 위원은 “공증이 필수는 아니지만 차용증을 작성한 시점을 소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위원은 부모가 자녀에게 빌려준 돈이 나중에 증여로 판단될 수 있는 대표적인 경우로 세 가지를 꼽았다. 차용증을 써두고도 약정한 원금이나 이자를 갚지 않는 경우, 자녀의 소득이나 재산에 비해 갚기 어려운 금액을 빌려주는 경우, 현금으로 주고받아 거래 기록이 남지 않는 경우다. 박 위원은 “부모에게 각각 돈을 빌린 것으로 차용증을 두 장 작성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세무당국은 한 사람에게서 전액을 빌린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부모에게 빌린 전세금은 어떻게 갚는 게 좋을까. 박 위원은 무이자로 빌렸다면 매달 원금 일부를 갚는 방식을 권했다. 이자를 내지 않는 만큼 만기 전에 세무당국이 확인하더라도 실제 상환 내역을 보여줄 수 있어서다. 남은 원금은 전세 만기에 돌려받은 보증금으로 갚으면 된다. 이체할 때 ‘전세자금 원금 상환’이라고 적어두면 다른 가족 간 송금과 구분하기 쉽다.
만기에 한꺼번에 갚기로 했다면 상환 재원을 보여줄 자료가 더욱 중요하다. 박 위원은 “전세 만기 시 전세금을 임대인이 부모님 계좌로 지급한다는 특약사항을 넣는 것을 권유드린다”고 말했다. 또 “자녀가 보유한 부동산에 부모를 채권자로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것도 차용 사실을 뒷받침하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부모가 받은 이자에도 소득세 붙어
부모가 이자를 받기로 했다면 세금 처리도 따라온다. 부모가 자녀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는 이자는 세법상 ‘비영업대금의 이익’에 해당한다. 자녀는 이자를 지급할 때 소득세 25%와 지방소득세 2.5%를 합해 27.5%를 뗀다. 가령 2억 원을 연 2%로 빌려주고 이자를 1년 뒤 한꺼번에 받기로 했다면 약정 이자는 400만 원이다. 자녀는 약속한 날에 세금 110만 원을 뺀 290만 원을 부모에게 보내고 떼어둔 세금은 이자를 지급한 달의 다음 달 10일까지 신고·납부하면 된다.
박 위원은 이자를 받은 부모도 다음 해 5월 종합소득세 신고 대상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자를 받을 때 세금을 뗐더라도 자녀에게 받은 이자를 포함해 한 해 이자·배당소득 합계가 2000만 원을 넘으면 종합소득세 신고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약속한 날에 돈을 갚기 어렵다면 상환을 미룬 이유와 새 상환일을 변경계약서에 남겨두는 게 좋다. 돈을 빌려준 부모가 사망하면 아직 갚지 않은 돈을 받을 권리는 상속재산에 포함된다. 이후 그 채권을 물려받은 사람이 자녀의 빚을 면제해주면 증여세가 부과될 수 있다.
박 위원은 국세청의 부채 사후관리 대상이 되면 빌린 돈을 다 갚을 때까지 소명 부담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얼마를 갚았는지, 갚는 데 쓴 돈은 어디서 마련했는지 등 밝혀야 한다. 그는 “증여세를 납부하더라도 증여세 신고를 하는 게 돈과 노력을 아끼는 길일 수 있다”며 자녀에게 돈을 건네기 전에 상환 계획과 세금 부담을 전문가와 함께 따져볼 것을 권했다.
‘정지원의 머니 트레이스(Money Trace)’는 은행권 금융·세무 전문가와 함께 생활 속 재테크 노하우를 풀어가는 코너입니다. 돈을 모으고 불리고 지키는 선택을 하나씩 짚으며 부자가 되는 길을 따라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