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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신 하이브 아메리카 사장 “한국인 정서가 세계 움직인다”

05.11.2026 1분 읽기

할리우드에서 영화와 TV 콘텐츠 제작을 이끄는 제임스 신 하이브 아메리카 영화·TV 부문 사장은 K콘텐츠의 경쟁력을 한국인의 독특한 정서에서 찾았다. 한국 사회에 축적된 감정과 역사적 경험이 창작의 동력이 되고, 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능력이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낸다는 분석이다. 다만 글로벌 콘텐츠 산업에서 지속적으로 경쟁하려면 창작 역량을 뒷받침할 고위급 인재와 세계적인 스타를 더 많이 배출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인스타그램 속 서울이 전부 아니다”…현실을 담는 창작의 힘

신 사장은 3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빌트모어 호텔에서 열린 ‘프리 유녹(PRE U-KNOCK)’ 한인 엔터테인먼트 라운드테이블에서 “한국인은 정말 대단하다. 밑바탕에 울분과 불안이 있고, 어깨에는 응어리가 앉아 있다”며 “우리 이야기와 조상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정말 많다”고 말했다. 이어 “조심스러운 표현이지만 한국인의 이러한 정서는 ‘아시아의 유대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며 “한국인들은 자신의 이야기와 조상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하고, 외부 문화를 배우고 관찰하며 흡수한 뒤 자신만의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신 사장은 K콘텐츠의 또 다른 경쟁력으로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창작 태도를 꼽았다. 그는 “많이 생각해 본 문제라 조금 철학적으로 말씀드리면, 이제는 사람들이 ‘소울’을 페티시화하는 지점까지 온 것 같다”며 “서울에서 시간을 보내 보면 전부 인스타그램 속 모습은 아니다. 지금 이곳 LA 다운타운에 나가 봐도 야자수와 화려한 조명만 있는 게 아닌 것과 같다. 현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시각에서 높이 평가하는 점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의 화려하고 세련된 이미지뿐 아니라 그 이면에 존재하는 현실과 사람들의 삶까지 콘텐츠로 담아내는 창작 태도가 세계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신 사장은 한국 창작자들의 장르적 실험과 파격적인 시도에도 주목했다. 쿠엔틴 타란티노와 폴 토머스 앤더슨을 언급하며 한국에도 기존 장르의 틀을 깨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 창작자가 많다고 평가했다. 한국 콘텐츠가 밝고 화려한 이미지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와 인간의 어두운 면까지 솔직하게 보여주는 점이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케이팝: 더 데뷔’부터 BTS 다큐까지…한미 협업의 새 모델

신 사장은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 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한미 공동제작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봤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BTS 다큐멘터리 ‘BTS: 더 리턴’을 제작한 사례를 들며 “BTS와 한국 레이블 빅히트, 베트남계 미국인 영화감독 바오 응우옌이 함께한 동서양의 훌륭한 결합이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추진 중인 영화 ‘케이팝: 더 데뷔’(K-Pop: The Debut)도 대표적인 협업 사례다. 2027년 2월 전 세계 극장 개봉을 목표로 하는 이 작품은 메이저 스튜디오 영화로는 처음으로 100% 서울에서 촬영했다고 신 사장은 밝혔다. K팝 오리지널 음악과 다수의 아티스트 카메오가 등장하며, 배우 유지태가 LA 코리아타운의 이민자 아버지 역을 맡았다. 딸이 의대에 진학하기를 바라지만 딸은 몰래 K팝 아이돌 오디션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다. 파라마운트 픽처스가 배급을 맡고 자체 자금도 투자한다.

신 사장은 2018년 처음 이 프로젝트를 접한 뒤 네 곳의 스튜디오를 거치며 8년간 개발 과정을 밟았다고 밝혔다. 그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성공으로 아시아계 출연진을 내세운 상업영화의 가능성이 열렸고, 당시 이 작품을 다음 주자로 제안했다”며 “그사이 BTS와 블랙핑크 등 K팝의 성장이 이어지면서 프로젝트의 기회도 더욱 강력해졌다”고 말했다.

한국 IP의 해외 활용 역시 단순한 판권 수출을 넘어 공동제작과 공동 브랜딩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파친코’, ‘쇼군’, ‘도쿄 바이스’와 같은 사례처럼 이미 만들어진 콘텐츠를 단순히 미국화하거나 서구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함께 일하는 방식이 중요하다”며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이 이런 만남을 지속적으로 마련해 서로의 IP를 알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가와 이야기는 충분”…글로벌 스타·산업 리더는 부족

다만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지속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고 진단했다. 신 사장은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여전히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주요 수출 산업”이라며 “한국 엔터테인먼트가 글로벌 무대에 속하도록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매일 고민한다”고 말했다.

그가 꼽은 가장 큰 과제는 산업을 이끌 고위급 인재와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스타의 부족이다. 신 사장은 “재능 있는 작가와 이야기는 충분하다”면서도 “고위·시니어 레벨의 임원이 부족하고, 스튜디오 관계자들이 한눈에 상업성을 알아볼 만한 영화·TV 스타도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스티븐 연이나 대니얼 대 김 같은 배우 몇 명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창작 역량은 이미 갖췄지만, 이를 글로벌 산업의 지속적인 성과로 연결할 인력과 시스템은 더 보완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 특유의 창작 정체성을 지키면서 글로벌 자본과 제작 시스템, 인재 네트워크를 결합하는 것이 K콘텐츠의 다음 과제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한편 신 사장은 하이브 아메리카에서 영화와 TV를 중심으로 다큐멘터리와 음악 기반 콘텐츠 등을 제작하고 있다. 소니 픽처스와 소니 텔레비전, 스쿠터 브라운이 이끈 SB 프로젝트 등을 거치며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제작·유통 구조를 경험했다. 1970년대 미국으로 이민한 어머니를 둔 그는 1980년대 시카고에서 태어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우며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접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 영화와 TV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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