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서울대 학생들을 만나 저성장과 부채 증가, 미중 패권 경쟁, 인공지능(AI) 혁명이라는 복합 위기에 직면한 한국 경제의 돌파구로 ‘신 자본주의’, ‘AI 네이티브 국가’, ‘한·일 경제연대’, ‘성장 인센티브’ 4대 해법을 제시했다. 기존 경제 시스템으로는 급변하는 세계 경제 질서에 대응하기 어려운 만큼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부터 국가 성장 전략까지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 회장은 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에서 경제학부 재학생 등 4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AI 시대, 세계 경제 패러다임 변화와 대한민국의 비전’을 주제로 이 같은 내용의 특강을 진행했다. 서울대 경제학부 학생들과의 만남은 2022년 4월 ‘시장의 변화, 미래의 기업’ 특강 이후 약 4년 반 만이다.
최 회장은 이번 특강에서 “30년 넘게 기업을 경영하며 ‘변화’에 익숙하지만, 그 속도와 크기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AI 시대는 경제학의 시장 원리나 전통 모형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변수가 많아졌다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수요와 공급을 중심으로 시장을 이해했다면 디지털 경제에서는 개별 고객과의 관계가 중요해지는 등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는 게 최 회장의 인식이다.
이러한 진단을 바탕으로 △사회 문제 해결이 곧 경제활동이 되는 ‘뉴 캐피탈리즘(신 자본주의)’ △지능 수출국으로 도약하는 ‘AI 네이티브 국가’ △한·일 경제연대를 발판으로 세계 질서를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는 ‘확장 옵션’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인센티브 시스템’ 4가지 해법을 제안했다.
특히 미국 엔비디아의 젠슨 황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제시한 ‘AI 5대 층’인 에너지,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거대언어모델(LLM), 애플리케이션을 ‘AI 네이티브 국가로 가기 위해 키워야 할 분야’로 소개하며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한국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운신의 폭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줄곧 강조해 온 한·일 경제연대 구상에 대해서도 “자유무역체제가 옅어지는 가운데 국내총생산(GDP) 2조 달러의 한국과 4조 달러인 일본의 경제가 묶이면 그 파급력은 단순히 3배가 아닌 그 이상 커질 것”이라며 “양국이 겪는 저출산, 고령화 등 사회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부연했다.
최 회장은 이날 학생들에게 경영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생각을 가감 없이 공유하기도 했다. 2100조 원에 달하는 메가프로젝트 투자 발표와 관련해서는 “저도 ‘이거 이렇게 발표해도 되나’라는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다”며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하겠다는 의지와 생각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AI 투자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대규모 베팅이 불가피하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전 세계가 이 (AI) 게임에 들어와 있어 이렇게 베팅을 안하고서는 쫓아갈 방법이 없다”며 “과거에는 200조원만 하더라도 엄청난 투자라고 생각했고 20조원 투자도 쉬운 이야기는 전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이 생각하는 AI 인재 육성 방향이 무엇이냐’는 학생 질문에는 “어디서나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닌, 직접 새로운 걸 자유롭게 설계하며 경험하는 게 ‘AI 네이티브 국가’로 가는 기초가 될 것”이라며 “이전의 시도가 실패해도 그걸 경험으로 삼고 도전을 계속하면 ‘시스템’이 만들어진다”고 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