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과 대우건설·두산에너빌리티 컨소시엄이 진행해오던 체코 원전 시공 계약 협상이 29일 결렬됐다. 체코 정부로부터 두코바니 원전 계약을 따낸 원청 격인 한수원은 대체 시공사를 찾아 약속된 시일 내에 공사를 끝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팀코리아’의 첫 유럽 사업이 흔들리면서 미국·베트남 등 후속 원전 사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수원은 이날 협상 종료를 선언한 뒤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지난해 6월 체코 발주사와 본계약을 맺은 이후 약 15개월간 실무회의 78회, 이견조정위원회 11회, 최고경영자 면담 2회 등을 진행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두코바니 사업은 체코에 1000메가와트(㎽)급 한국형 원전 APR1000 2기를 짓는 프로젝트다. 현재 종합설계용역(한전기술), 원자로설비 공급(두산에너빌리티), 터빈발전기설비 공급(두산에너빌리티) 분야는 계약이 완료됐고 원전연료 계약(한전원자력연료)과 시운전·정비용역(한전KPS) 계약 등이 남아 있다.
양측의 이견은 당초 1기였던 원전 건설 규모가 2기 늘어나면서 시작됐다. 한수원에 따르면 2018년 선정한 컨소시엄과 2022~2023년 입찰 때는 원전 1기를 짓는 공사비와 이를 미리 확정하는 계약 방식에 합의했다. 그러나 원전 2기 건설을 제안한 2024년 4월 최종 입찰 때는 공사비와 계약조건에 합의하지 못했다. 결국 한수원은 시공사와 가격을 확정하지 못한 채 자체 계산한 금액으로 체코에 입찰서를 냈다.
결국 쟁점은 설계가 구체화돼 공사비용이 늘어날 때 추가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다. 한수원은 기본설계 승인 시점에 총공사비를 확정하자는 입장인 반면 시공사인 대우건설 측은 상세설계 이후 늘어나는 물량을 정산해달라고 요구했다. 한수원은 발주사(EDUⅡ)와 총액 계약을 맺은 만큼 시공 계약만 추후 정산 방식이면 추가 비용을 떠안게 된다는 입장이다. 최일경 한수원 사업총괄본부장은 “현재 양측이 가격 차이가 1조 원 이상 벌어진 상황”이라며 “받아들일 수 없는 규모라 계약을 결렬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공사 컨소시엄 측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미 2024년 1월 제시했던 단가로 공사에 착수하기로 했고 손실을 감수하면서 전체 공사비를 더 낮춘 수정안까지 냈는데도 지난 7일 계약조건을 바꾼 뒤 3주 안에 결론을 내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컨소시엄 측은 “연말까지 검토 시간을 더 달라는 요청도 거부됐다”며 “설계에 참여하지 않는 시공사에 설계 변경으로 늘어나는 공사비를 부담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재협상을 요구했다.
한수원은 시공사를 교체해도 전체 공사 일정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내년 1월 잠재 시공사 대상 설명회를 열고 4월 입찰공고를 거쳐 7월까지 신규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반면 시공사 교체 과정에서 공기가 1년 이상 지연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심형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시공사가 정해져 있을 때와 비교하면 업무 효율성이나 후속 작업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고 우려했다.
새 입찰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한수원은 주계약에 맞춰 총액확정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새 시공사 역시 설계 변경에 따른 공사량 증가 위험을 따져봐야 한다. 업체를 바꾸더라도 비용과 책임 분담에 합의하지 못하면 같은 갈등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존 시공사와의 관계 정리도 남아 있다. 시공계약 협상 종료와 공동협력협약 종료는 별개로, 이미 수행한 업무의 비용 정산과 설계 성과물 인계 등을 협의해야 한다. 소송이나 가처분 등 법적 분쟁으로 번지면 새 시공사 선정과 업무 인계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한수원은 법적 분쟁이 생겨도 신규 시공사 선정을 병행하고 교체 과정의 추가 비용은 기존 사업비 범위에서 관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체코 발주사도 시공계약 지연에 우려를 표명해온 만큼 공기 준수 여부는 한국형 원전 수출사업의 신뢰도와 직결된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정부가 중재해 한수원과 시공사가 서로 양보하고 부담을 나누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공사가 늦어지면 지체상금 부담까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무부처 책임자인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일단 한수원 측의 손을 들었다. 그는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신규 시공사 선정이 불가피하다는 한수원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