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공지능(AI) 기업들의 과도한 차입과 순환거래가 금융 불안으로 이어질 경우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AI 투자 위축이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감소와 수출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은 27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AI 산업 자금 조달의 주요 특징과 리스크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AI 호조의 최대 수혜국인 우리나라는 글로벌 공급망과의 높은 연결성으로 인해 실물·금융 충격의 전이 강도가 과거보다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AI 기업의 수익화가 지연되면 데이터센터 건설과 그래픽처리장치(GPU) 구매가 줄어 국내 업체의 HBM 등 고부가 메모리 판매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AI발 호황을 뒷받침해온 글로벌 공급망과의 긴밀한 연결이 한국 경제의 취약 요인으로 지목된 셈이다. 실제 미국 빅테크의 차입은 빠르게 늘고 있는 상태다. 알파벳·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메타·오라클 등 5개 기업의 올해 1~9월 회사채 발행액은 2300억 달러(약 305조 원)가량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규모의 2배를 넘었다.
재무구조가 취약한 신생 AI 기업들의 복잡한 자금 조달 방식도 불안 요인이다. GPU 임대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생 사업자들인 ‘네오클라우드’는 장비를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있다. 일부 AI 기업은 특수목적기구(SPV)나 합작법인(JV)까지 활용하면서 실제 부채 규모와 최종 위험 부담 주체를 파악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기업 간 순환거래는 AI 수요를 실제보다 부풀릴 위험이 있다. 빅테크가 투자한 돈으로 AI 개발사가 다시 해당 기업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구매하는 식이다. 한은이 인용한 국제결제은행(BIS) 자료에 따르면 AI 개발사나 클라우드 사업자, 반도체 제조사 간 순환금융 비중은 50% 이상으로 추정됐다. 주요 빅테크가 앞으로 제공할 클라우드 서비스의 계약 금액 중 AI 기업과의 순환거래 비중은 오라클 47%, 마이크로소프트 41%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문제는 AI 산업의 부실이 반도체 수출을 넘어 금융시장에도 파급될 수 있다는 점이다. 회사채와 대출에 투자한 금융기관이 손실을 입으면 다른 기업에 대한 신용 공급도 축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 간 복잡한 자금 관계가 충격을 키울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은은 다만 AI발 금융위기가 당장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현 단계에서 주요 빅테크의 재무 상태가 양호하고 AI 투자도 실제 수요에 기반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연구진은 “장기금리 상승 국면에서 취약성은 점차 누적되고 있다”며 “리스크 발생 가능성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