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주요 지방자치단체에서 건축·토목 인허가를 심의하는 민간 위원들이 여러 지역의 위원회에 중복 위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전문가는 최대 9개 지자체에서 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어 특정 인사에게 심의 권한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한 관리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서울경제신문이 서울·인천·경기·부산·대구·대전 등 전국 30여 개 지자체의 건축위원회와 도시건축공동위원회 명단을 교차 분석한 결과, 3곳 이상 지자체의 심의위원으로 중복 등재된 인원은 27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가시설 토목과 구조 분야에서는 한 사람이 5~9개 지자체의 심의위원으로 위촉된 사례도 확인됐다.
각 지자체는 심의 권한이 특정 위원에게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례 등으로 다른 지자체 위원회와의 중복 위촉을 제한하고 있다. 제한 기준은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3~5개 위원회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도 심의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이해충돌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중복 위촉 제한을 권고해 왔다.
다만 지자체마다 위원회 구성과 운영 기준이 다르고 다른 지역의 위촉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통합 관리체계도 마련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위원 위촉 과정에서 중복 활동 여부를 충분히 확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조례 위반 여부는 지자체별 제한 기준과 위촉 기간 등을 추가로 확인해야 한다. 특정 전문가가 여러 지자체의 심의에 반복적으로 참여할 경우 개별 사업에 대한 판단이 소수 위원에게 집중될 수 있다. 특히 심의 대상 사업과 위원 사이에 이해관계가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도 중요해진다.
가시설 토목설계와 지하 안전 분야에서는 특정 특허 공법의 채택을 둘러싼 민원과 의혹이 제기돼 왔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일부 대형 공사에서 특정 공법 적용의 적정성 등을 놓고 사실관계 확인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건축·토목 심의는 공사 안전성과 설계의 적정성 등을 검토하는 절차다. 심의 과정에서 특정 공법의 적용 여부가 논의될 수 있는 만큼 위원들의 전문성과 함께 심사 기준의 객관성도 중요하다. 다만 중복 위촉 자체가 특정 업체에 대한 특혜나 부당한 심의로 이어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지자체 심의위원은 공무 수행과 관련해 청탁금지법상 공무수행사인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심의 과정에서 부정청탁이나 금품 수수 등을 방지하기 위한 관리가 필요하다. 지자체 역시 위원 위촉 과정에서 중복 위촉 제한 기준을 준수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 간 심의위원 위촉 현황을 공유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고 심의 절차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영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책사업감시단장은 “건축·토목 인허가 심의는 고도의 공적 권한인데도 특정 기술 인력들이 전국을 넘나들며 심의권을 남용하도록 방치한 것은 정부 주무 부처와 지자체의 명백한 직무유기”라며 “지자체 공무원과 심의위원 간의 유착 실태를 철저히 밝혀내고 전산 교차 검증 체계 등 근본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