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계란값이 급등하면서 산란계 사육 마릿수가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다.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실질소득이 감소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식재료인 계란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1인가구 확대와 식생활 변화 등 중장기적 변화도 계란 수요 확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3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6년 3분기 가축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1일 기준 전국 산란계는 8654만 4000마리로 전년보다 546만 1000마리(6.7%) 늘었다. 198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규모다. 2021년 3분기 7072만 2000마리부터 같은 분기 기준 5년 연속 증가했다.
최근 산란계가 급증한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해 가을부터 올봄까지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볼 수 있다. 당시 산란계 1134만 마리가 살처분되면서 올 6월 하루 평균 계란 생산량은 전년보다 3.3% 감소한 4705만 개에 그쳤다. 이 때문에 농가들이 병아리를 더 들여와 키우는 한편 기존 닭도 평소보다 수명을 늘려 사육했다는 것이다. 김인식 국가데이터처 농어업동향과장은 “시중 계란 양이 부족해져 공급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며 “높은 가격이 유지되면서 농가들이 산란계 사육을 확대할 유인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 이면에 고물가와 소비 여력 위축에 따른 식생활 변화도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식비 부담이 큰 소비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계란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의미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저렴하면서도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하려다 보니 가격이 강점인 계란 수요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데이터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전국 1인 이상 가구의 2025년 가구당 월평균 실질 소비지출은 전년 대비 0.4% 감소했다. 실질소득 역시 올해 고유가 지원금 등에 힘입어 1분기 0.4%, 2분기 1.5%로 각각 증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부 지원을 제거하고 보면 1분기 -0.3%, 2분기 -1.3%로 오히려 악화됐다. 청년 취업자 수 또한 2022년 11월 이후 4년 가까이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조리 편의성과 건강관리 수요도 계란 소비 증가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올해 초 공개한 소비자 조사에서 응답자의 44.7%는 지난해 가정 내 계란 소비를 늘렸다고 답했다. 소비 증가 이유로는 ‘조리·활용의 편리성’(33.0%)과 ‘건강관리 목적’(23.5%)을 주로 꼽았다. 데이터처에 따르면 전체 중 1인 가구 비중은 2000년 15.5%에서 지난해 36.6%로 높아졌다. 소량 조리와 보관이 편리한 계란이 1인 가구들의 소비 확대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소비도 증가하고 있다. 국민 1인당 연간 계란 소비량은 2010년 11.9㎏에서 지난해 15.4㎏으로 29.4% 늘었다. 농경연은 올해도 계란 소비가 지난해보다 증가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반면 산란계와 다른 축종은 대체로 사육 규모가 줄었다. 지난달 1일 기준 한우는 318만 마리로 전년 같은 시점보다 4.5% 감소했다. 돼지(-2.4%)와 육용계(-4.4%)도 마찬가지 흐름을 보였다. 가축전염병 피해에 번식 기반 축소가 겹친 영향으로 풀이된다. 한·육우의 가임 암소는 지난해 9월 162만 마리에서 올해 157만 마리로 줄었다. 같은 기간 돼지 모돈은 97만 1000마리에서 95만 1000마리로 감소했다. 농경연 관계자는 “사육 규모 조절이 상대적으로 탄력적인 가금류와 달리 한우와 돼지는 번식 기간이 길어 마릿수를 단기간에 쉽게 늘리거나 줄이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향후 계란 수급은 생산 확대와 사육환경 규제의 영향을 동시에 받을 전망이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7월 평균 6768원이었던 특란 30개 기준 산지 가격은 이날 5193원으로 내려갔다. 김 과장은 “산란계가 늘면서 산지 시세가 먼저 떨어졌고, 최근에는 소비자 가격도 하락하기 시작해 조금씩 안정을 찾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다만 내년 9월부터 시행되는 사육환경 규제가 변수로 꼽힌다. 정부는 닭 한 마리당 최소 사육공간을 기존 0.05㎡에서 0.075㎡로 넓히도록 했다. 농가가 같은 수의 닭을 키우려면 사육시설을 확충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같은 시설 개선이 필요한 농가는 5월 기준 655곳으로 집계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