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가 아닌 참고인에게도 압수수색 영장 사본을 교부해야 하는지를 두고 헌법재판소에서 4시간가량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법원 확정재판의 헌법 위반 여부를 다투는 ‘재판소원 제도’ 시행 이후 처음 열린 헌재 공개변론이다.
헌재는 21일 대심판정에서 김영수 법무법인 행복 변호사가 압수수색 영장 사본 교부 거부를 적법하다고 판단한 대법원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제기한 재판소원 사건의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피의자가 아닌 압수수색 대상자에게 영장 사본을 교부하지 않도록 한 형사소송법 규정이 평등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이를 적용한 대법원 재판을 취소할 수 있는지 여부다.
형사소송법 제118조는 압수수색 영장의 처분을 받는 자가 피고인인 경우 영장 사본을 교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219조에 따라 수사 단계의 피의자에게도 적용된다.
김 변호사는 변론에서 해당 규정이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 원칙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또 수사 편의주의를 위한 불완전한 입법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압수수색이 영장 제시를 통해 공개적으로 집행되는 만큼 사본 교부만으로 수사 기밀이 추가로 유출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최호진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피의자와 참고인이 모두 압수수색 처분을 받는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이라며 사본 교부 여부를 달리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반면 이해관계인 법무부를 대리하는 정부법무공단은 수사 기밀 유지와 증거인멸 가능성 등을 고려해 사본 교부 대상을 한정한 입법 취지를 존중해야 한다고 맞섰다. 법무부 측은 실무상 참고인에 대한 압수수색이 피의자에 대한 압수수색보다 먼저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영장 사본이 유출되면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사의 밀행성과 영장에 기재된 개인정보의 유출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피의자인 피압수자에게만 영장 사본을 교부하도록 한 데에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김 변호사가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이 기각된 이후 별도의 헌법소원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이번 재판소원 청구는 적법 요건을 갖추지 못해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개변론에서는 김상환 헌재소장을 제외한 재판관 8명의 질문이 이어졌다. 김형두 재판관은 실제 압수수색 영장을 화면에 띄우며 영장을 제시하는 것만으로 피압수자가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지 물었다.
김 변호사는 영장 사진 촬영이나 메모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며 “불과 5분, 10분 동안에 제시한 걸 보고 범죄 사실과 압수 대상의 관련성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법무부 측은 압수수색 집행 과정에서 영장을 계속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실무 개선이 필요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다만 영장 제시가 충분하지 않은 문제와 사본 교부를 의무화하는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재판관은 수사 밀행성을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영장 사본을 교부하는 방안도 가능한지 따져 물었다. 법무부 측은 교부 유예 방안을 입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면서도 참고인에 대한 압수수색이 피의자보다 먼저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수사 기밀 유출 위험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답했다. 또 이러한 대안을 도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현행 규정이 위헌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오영준 재판관은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 과정에서 무관한 사생활 정보까지 광범위하게 수집될 수 있다며 “제3자는 보호장치가 매우 부족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정형식 재판관은 김 변호사에게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이 기각된 뒤 별도의 헌법소원을 제기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김 변호사는 대법원의 재항고 결정으로 불복 절차가 종료된 만큼 해당 결정 자체를 재판소원으로 다툴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취지로 답했다.
앞서 고(故)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을 수사하던 안미영 특별검사팀은 2022년 7월 참고인 신분이던 김 변호사의 집과 법무법인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김 변호사는 영장 사본 교부 요청을 거부당하자 압수수색 처분과 사본 교부 거부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준항고를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은 2023년 스마트폰 등에 대한 압수수색 처분을 취소했지만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에게 영장 사본을 교부할 의무는 없다고 판단했다. 김 변호사와 특검 모두 재항고했으나 대법원에서도 원심 판단이 유지됐다.
헌재는 이날 변론을 종결하고 추후 선고기일을 지정하기로 했다.
한편 헌재는 이달 23일 녹십자 과징금 관련 재판소원 공개변론도 진행할 예정이다. 해당 사건은 재판소원 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전원재판부에 회부돼 정식 심리가 진행된 사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