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부터 가상화폐 과세를 추진할 예정인 가운데 국내 디지털자산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 10명 중 9명 이상이 과세를 유예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미국이 가상화폐 자동정보교환체계(CARF)에 참여하는 2029년 이후로 과세를 연기해야 하며 충분한 준비 없이 세금을 부과할 경우 국내 거래소 자금의 ‘엑소더스’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8일 서울경제신문이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와 빗썸 같은 대형 거래소와 커스터디(수탁), 블록체인 인프라 등 디지털자산 업계 최고경영자(CEO)와 학계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설문을 보면 응답자의 93.4%(28명)가 내년 코인 과세 유예에 찬성했다. ‘매우 찬성’이 70%로 가장 많았고 ‘찬성’이 23.4%로 뒤를 이었다. 유예에 반대한 응답자는 1명(3.3%)에 불과했다.
유예에 찬성한 이들(28명)은 세금을 부과하는 시점을 최소 2년 이상 늦춰야 한다고 봤다. 가장 많은 39.3%가 ‘2029년 시행’을 택했고 35.7%가 ‘2030년’을 골랐다. ‘2031년 이후’ 역시 21.4%에 달해 절대다수인 96.4%가 2029년 이후 시행해야 한다고 답했다.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형평성이다. 가상화폐가 국내외 거래소와 개인 지갑을 넘나들며 복잡하게 이동하는 상황에서 과세 당국이 모든 거래를 정확히 파악해 투자자들에게 동일한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설문에서도 국세청이 해외 거래소와 개인 지갑 거래까지 정확히 파악하고 과세할 수 있다고 보는 응답자는 2명(6.6%)에 불과했다. 답변자의 46.7%는 정보 파악 및 거래 역량이 ‘매우 부족’이라고 했고 ‘부족’을 고른 이도 40%나 됐다.
세금을 내야 하는 투자자들 역시 준비가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개인이 국내외 거래소와 개인 지갑에 흩어진 거래 내역을 일일이 취합하고 취득가액과 손익까지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설문 응답자의 90%는 투자자들의 신고 준비가 미흡하다고 평가했으며 절반은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고 했다.
업계는 이처럼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과세를 밀어붙일 경우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거래소로 대거 이탈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응답자의 86.7%는 과세 시행 이후 국내 주요 거래소의 거래 대금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30% 이상 감소’가 56.7%, ‘10~30% 감소’가 26.7%, ‘0~10% 감소’는 3.3% 등이었다. ‘영향이 없다’는 응답은 10%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원화 코인 거래소의 일평균 거래 대금은 3조 1000억 원 수준이다. 단순 계산으로 상반기에 558조 원이 거래됐다. 국내 디지털자산 업체 대표 A 씨는 “해외 거래소로의 엑소더스가 불 보듯 뻔하다”고 우려했다.
세 부담을 둘러싼 형평성 논란도 거세다. 현행 제도대로라면 가상화폐 투자로 얻은 연간 소득에서 250만 원만 공제한 뒤 나머지에 22%의 세율이 적용된다. 과거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당시 국내 상장주식 등에 적용하려던 기본공제액 5000만 원의 20분의 1 수준이다. 응답자의 70%는 가상화폐 기본공제액을 5000만 원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세 전문가인 B 교수는 “유예 기간에는 과제별 책임 기관과 완료 기한, 검증 기준을 명시해야 한다”며 “단순히 과세 시점만 늦추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복된 과세 유예에도 제도 정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한 정부 책임론 또한 제기됐다. 가상화폐 과세는 당초 2022년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세 차례 연기돼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디지털자산 분야의 C 교수는 “과세 유예를 몇 차례 하는 동안 기존 정책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반성과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비판했다.
과세 유예 요구가 거세지면서 정부도 업계 의견 수렴에 나선다. 권대영 재정경제부 1차관과 유영준 금융위원회 디지털금융정책관은 20일 5대 가상화폐 거래소 대표를 만나 과세 준비 상황과 제도 개선 요구를 청취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