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중반 미국의 ‘러스트벨트’를 중심으로 청년 스타트업을 통해 쇠퇴하는 지역 경제를 일으켜보자는 ‘벤처 포 아메리카(VFA·Venture For America)’ 프로젝트가 추진된 적이 있다. 미국인 기업가 앤드루 양이 고액 자산가와 대기업의 자금 후원을 받아 기업가정신을 가진 청년들을 선발하고, 2년간 급여를 주면서 고강도 비즈니스·기술 훈련과 동문 멘토링 결합 등을 시도했다. 이들 스타트업으로 디트로이트·볼티모어·피츠버그 등 제조업이 몰락한 도시들의 혁신을 견인하자는 취지였다.
VFA는 비록 2024년 자금난으로 사업이 중단됐지만 13년간 1600명 이상의 예비 창업가와 이들이 지역에 설립한 375개 스타트업이 10억 달러가 넘는 벤처 투자를 유치했다. 병아리콩 파스타 기업인 반자(Banza)나 여성 건강 전문 기업 윙스헬스(Winx Health) 등 성공 사례 외에도 VFA 동문들 중심의 ‘엠버 펠로십’이 빛을 발해 미국 낙후 도시 스타트업 생태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든 지역에 청년들의 창업을 도와줄 이런 혁신금융 생태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쉽게도 지금 우리 지역은 여러 가지 이유로 혁신 기술, 스타트업의 태동이 점차 둔해지고 있다. 이들의 혁신을 견인할 금융 서비스마저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 5년간 신규 벤처 투자액(약 35조 원)의 70%가 수도권에 집중돼 비수도권은 투자 가뭄의 볼멘소리가 터져나오는 실정이다. 지역에서 출발한 유망 스타트업들이 성장 단계가 되면 수도권으로 옮겨가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역의 스타트업 혁신을 지역 자본으로 뒷받침하려면 기업 성장 단계에 맞는 혁신 자본 사슬이 지역에서 온전히 작동하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우수한 청년 스타트업이나 성장 단계로 점프업하는 기업들의 투자 가뭄을 해소해줄 ‘돈쭐’ 현상이 지역에도 나타나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중소벤처기업부 모태펀드 지원을 받아 지방정부가 금융기관·대기업 등과 추진 중인 권역별 ‘지역성장펀드(벤처 모펀드)’에 관심이 모인다. 현재 지역성장펀드는 부산·대구·광주·충청·경남·경북 등 14개 비수도권 전 지역에서 총 1조 원 규모로 조성돼 58개의 자펀드(총 1조 2000억 원) 결성을 지원하는 등 지역 투자 재원 조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특히 다른 지역 전용 펀드와 달리 펀드의 조성·운용을 지방정부가 주도해 지역의 호응도가 높고, 펀드 종료 후에도 회수 재원이 해당 지역에 재투자되는 구조여서 해당 지역에는 든든한 금융 지원군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지역성장펀드는 여전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아 보인다. 우선 늘어나는 투자 수요에 비해 모펀드의 규모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고 펀드 출자기관(LP) 층도 두텁지 않은 것이 문제다. 연기금, 기관투자가, 글로벌 LP들의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우선 손실 충당, 초과 수익 이전, 콜옵션, 투자 기업 지분 우선매수권 같은 다양한 출자자 인센티브를 다각도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모펀드 운용에 있어 나눠먹기식 펀드 배분이나 운용사 또는 투자 대상 기업 선정 시 역선택이나 정치권의 불필요한 개입 등을 방지할 견제 장치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펀드 운용의 공정성 외에도 수익성 확보가 추가 투자나 안정적 펀드 운용에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혁신금융 생태계가 성공적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선순환의 혁신 자본 작동 구조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모처럼 민관 협력으로 지역성장펀드 구조가 마련된 만큼 지역 혁신 생태계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세심한 정책적 관심과 배려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