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고객 예금금리가 연 4%를 넘어선 것은 국내외 시장금리 상승에 따른 예정된 수순이다. 한국은행이 연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면서 시중금리가 더 뛰기 전에 자금을 확보하려는 수요도 있다. 업계에서는 예금금리 상승이 결국 대출금리에 반영되면서 ‘영끌족’의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30일 금융계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28일 기준으로 1006조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939조 원에 머물렀지만 증시가 횡보 장세에 접어든 6월 이후 빠르게 늘었다. 정기예금 잔액은 7월 말 985조 원을 넘어서더니 지난달 1000조 원을 돌파했다.
9개월간 정기예금 잔액이 70조 원가량 급증한 것에는 은행들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린 영향이 컸다. 우리은행의 ‘WON기업정기예금’의 1년 만기 금리는 올 들어서만 1.12%포인트 올라 4.09%까지 상승했다. 개인 고객 대상 ‘WON플러스예금’도 같은 기간 0.65%포인트 올라 3.50% 금리를 제공한다. NH농협은행과 신한은행도 최대 1.1~1.2%포인트가량 올리면서 1년 만기 예금금리가 3.7%대를 훌쩍 넘어섰다.
은행들은 정기예금 잔액의 약 80%를 차지하는 법인 자금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고객 한 곳당 예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금리를 후하게 쳐주면서라도 한번에 자금을 확보할 유인이 있다. 또한 기업들은 개별 영업점과 협상을 통해 금리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 금리는 고시한 수준보다 높은 사례도 적지 않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 고객은 한 번 거래를 맺으면 여신·퇴직연금·외환 등의 부대 거래를 유치할 수 있다”며 “파생되는 사업 기회가 많은 점도 개인보다 금리가 높은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개인 고객에게 판매하는 예금금리도 함께 뛰고 있다. 농협은행의 ‘NH올원e예금’의 1년 만기 금리는 3.55%로 지난달 말보다 0.30%포인트 올랐다. IBK기업은행의 ‘IBK굴리기통장’ 금리도 이달 들어 0.26%포인트 인상됐다. 은행들은 단기 상품 금리도 대폭 올리고 고금리 특판 상품도 내놓고 있다. 신한은행은 이날 ‘쏠편한 정기예금’의 3개월 만기 금리를 2.85%에서 3.10%로 인상했다. 우리은행도 9% 금리 혜택을 제공하는 ‘다함께 적금2’ 상품을 한 달간 특별 판매한다.
시장에서는 채권시장 금리도 들썩이고 있어 당분간 은행권의 여수신 금리 인상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고정형·혼합형 금리의 산정 기준이 되는 금융채 5년물(무보증·AAA) 금리는 지난해 말 3.49%에서 이달 4.6%를 넘나들고 있다. 미국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29일(현지 시간) 장중 5.6%를 넘겨 24년 만에 최고치를 찍으며 국내 시장금리 상승 압력을 높이고 있다. 금융계의 관계자는 “금리 상승세가 이어지면 은행채 발행 금리 인상이 불가피할 수 있다”며 “이는 대출금리 연쇄 인상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수신금리 상승은 시차를 두고 대출금리에 반영된다. 특히 최근에는 예금의 만기가 짧아지고 있다. 신한은행이 이날 3개월 만기 예금금리를 0.25%포인트 상향 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경우 단계적으로 수신과 대출금리가 더 오르는 결과를 낳는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최근 금리 인상기로 접어들면서 자금을 단기로 운용하려는 고객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 대출금리는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은행이 지난달 취급한 가계대출(신규취급액 기준) 평균 금리는 4.90%로 전월보다 0.19%포인트 올랐다. 현재 5대 은행의 고정형 주담대 금리는 연 4.91~6.88% 수준에서 형성돼 있다. 금융권에서는 연내 주담대 금리 상단이 8%를 넘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는 가계 이자 부담으로 이어진다. 6월 말 현재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22조 9000억 원으로 금리가 0.1%포인트 오르면 단순계산으로 연간 1조 229억 원의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시장금리 상승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라며 “금융채와 예금의 금리가 오르면 결국 대출금리 상승 압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