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신화 속 테베 왕가의 비극을 따라가며 인간과 문명의 폭력성을 파헤치는 대형 연극 프로젝트 ‘안트로폴리스’의 네번째 이야기가 무대에 오른다. ‘안트로폴리스’는 독일 현대 연극의 거장 롤란트 쉼멜페니히가 고대 그리스 비극과 신화를 바탕으로 재창작한 5개의 연작이다. ‘안트로폴리스’는 인류세를 뜻하는 ‘안트로포챈(Anthropozän)’과 도시를 뜻하는 ‘폴리스(Polis)’를 결합한 제목이다. 2023년 독일 함부르크 도이체스 샤우슈필하우스에서 초연됐으며, 테베의 건국에서 몰락까지를 ‘프롤로그/디오니소스’ ‘라이오스’ ‘오이디푸스’ ‘이오카스테’ ‘안티고네/에필로그’ 등 5편에 걸쳐 그린다. 국립극단은 지난해 1·2부를 국내 초연한 데 이어 올해 3~5부를 차례로 선보이고 있다.
국립극단은 다음달 28일부터 11월 21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안트로폴리스Ⅳ-이오카스테’를 공연한다. 아이스킬로스의 ‘테베를 공격하는 일곱 용사’와 에우리피데스의 ‘포이니케 여인들’에서 영감을 받아 쉼멜페니히가 새롭게 쓴 작품으로, 서지혜가 연출을 맡는다.
이야기는 오이디푸스가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진실을 깨달아 스스로 눈을 찌른 뒤 시작된다. 그의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테베의 왕권을 번갈아 맡기로 하지만 형 에테오클레스가 약속을 깨면서 전쟁에 돌입한다. 어머니 이오카스테는 두 아들의 파국을 막기 위해 중재에 나선다.
원전 신화에서 비극의 한가운데 놓였던 이오카스테는 이번 작품에서 운명에 끌려가는 인물이 아니라 이를 바꾸려는 정치적 인물로 재탄생한다. 그는 과거 자신들에게 선택권이 없었다면 지금은 평화를 선택할 수 있다고 두 아들을 설득한다. 하지만 타협과 공존을 향한 호소에도 권력에 대한 욕망은 전쟁으로 치닫는다.
무대는 고대 테베와 오늘날의 전쟁터를 뒤섞는다. 테베의 일곱 성문을 둘러싼 전투에는 순항미사일과 스나이퍼, 유엔(UN), 종군기자 등이 등장한다. 총성과 사이렌, 분진과 핏빛으로 뒤덮인 무대 역시 고대의 신화를 현대의 내전과 겹쳐 보이게 한다. 서 연출은 “전쟁을 단순히 파괴와 슬픔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문명과 인류의 역사라는 넓은 시야에서 바라본다”며 “‘멈추지 못하는 문명은 어디까지 나아갈 것인가’라는 질문까지 던지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시리즈를 관통하는 대형 구조물 ‘빌보드’도 다시 등장한다. 뉴스를 쏟아내는 빌보드는 문명의 발전을 상징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정보와 욕망을 주입하며 인간의 시선과 사고를 특정 방향으로 이끄는 미디어의 속성을 보여준다.
‘안트로폴리스’의 대장정은 연말까지 이어진다. 국립극단은 12월 2일~26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정영두 연출의 마지막 5부 ‘안티고네/에필로그’를 공연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테베에서 국가의 명령을 거슬러 죽은 오빠의 장례를 치르려는 안티고네를 통해 개인의 양심과 국가 권력의 충돌을 다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