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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켜진 건가요”…500字 취임사에 담긴 이형일의 ‘조용한 리더십’

26.09.2026 1분 읽기

“마이크 켜진 건가요. 제 목소리 톤 괜찮습니까”

지난 22일 오전 9시30분께 재정경제부 내부 방송으로 내보낼 취임사를 녹음하기 직전 이형일 신임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의 목소리에는 다소 긴장감이 묻어 있었다. 이내 PD의 ‘오케이’ 수신호가 떨어지자 “재경부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신임 부총리 이형일입니다”라는 인사로 시작해 차분하게 취임사를 읽어 내려갔다.

500자 분량의 짧은 취임사였지만 그 안에는 30년 넘게 경제관료로 일하며 ‘에이스 관료’, ‘닮고 싶은 상사’로 꼽혀 온 이 부총리의 공직관과 업무 방식,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25일 관가에 따르면 별도의 취임식 없이 사내방송으로 첫 인사를 대신한 이 부총리의 취임 행보가 재경부 직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짧고 담백한 취임사 곳곳에 평소 이 부총리의 생각이 그대로 묻어났다는 반응이 나온다.

취임사 초반에 등장한 ‘문턱 하나’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이 부총리는 “오늘부터 차관실에서 부총리실로 문턱 하나를 넘었을 뿐 대한민국이 마주한 경제 상황도,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도, 국민에 대한 책임도 어제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재경부 전신인 기획재정부 등을 통틀어 현직 차관에서 경제부총리로 직행한 첫 사례지만, 자리가 바뀌었다고 정책이나 일하는 방식까지 달라져서는 안된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으로도 읽힌다. 그는 “그동안 여러분과 함께 고민해온 일들이 그대로 제 책상 위에 있다”며 정책의 연속성을 강조했다.

2분이 채 되지 않는 녹음 방송으로 취임식을 대신한 이 부총리는 첫날부터 현안으로 곧장 뛰어들었다. 오전에는 국회 재정경제위원회를 찾아 대미 투자 관련 내용을 비공개 보고한 뒤 오후엔 첫 주요 간부회의를 주재하며 실물경제와 부동산·금융·외환시장 전반의 리스크를 원점에서 재점검하라고 주문했다.

반도체 업황과 글로벌 자본 흐름, 지정학적 위험 등을 거론하며 “눈앞의 지표에 안주하지 말라”는 주문도 내놨다. 밤엔 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국 경제 투자설명회(IR)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뉴욕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 역시 별도의 자료 배포나 사전 일정 공지 없이 조용히 이뤄졌다.

재경부 안팎에서 이 부총리는 꼼꼼하고 신중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관료로 통한다. 앞에 나서 강한 메시지를 던지기보다 실무를 세세하게 챙기고, 직원들에게 무리하게 일을 떠넘기기보다는 자신이 먼저 움직이는 스타일이라는 평가도 있다.

취임사에서도 이런 조직 운영 철학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직원들에게 “각자의 자리에서 공직자로서 초심과 한결같은 자세를 지키면서 국민에게 필요한 답을 찾는 데 최선을 다해달라”고 주문하면서도 “여러분 책상에 놓인 그 무거운 짐은 제가 가장 앞장서 조율하고 판단하며 함께 짊어지겠다”고 했다. 이어 “열심히 일한 만큼 제대로 인정받고 공직의 보람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재경부를 만들어가겠다”는 약속도 내놨다.

정책 방향으론 성장과 민생을 함께 제시했다. 이 부총리는 “경제 성장은 숫자만으로 체감되지 않는다”며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성장의 온기가 국민 삶에 고르게 퍼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물가 안정을 “민생 경제의 기본이자 양극화 완화의 출발점”으로 규정하며 “국민이 성장의 성과를 체감하도록 정책을 꼼꼼하게 챙기겠다”고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대외 소통에선 꼼꼼한 그의 진가가 드러나고 있다. 이 대통령이 22일 엑스에 전략형 국부펀드와 관련한 메시지를 내놓자 이 부총리는 국부펀드를 차질 없이 준비해 성과가 국민에게 돌아가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이 대통령이 다시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하자 “열심히 뛰겠습니다”라고 즉각 화답했다.

이제 관건은 이런 ‘조용한 실무형’ 업무 방식이 경제팀을 움직이는 조정력으로 이어질지 여부다. 재경부와 기획예산처가 분리돼 과거 경제부총리와 달리 예산권이라는 강력한 정책 수단이 없는 만큼 부처 간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당장 이달 말 발표될 수십조원 규모의 초과세수의 활용 방향이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국채 상환과 미래대응기금 적립, 전략형 국부펀드 등 미래 투자 사이에 재원을 어떻게 배분하고 정책 우선순위를 세울지가 핵심 과제로 꼽힌다. ‘가장 앞장서 조율하고 판단하겠다’는 약속이 실제 경제팀 운영에 어떻게 구현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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