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출간 이후 2년 만에 100만 부 넘게 판매된 ‘82년생 김지영’으로 여성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을 조명했던 조남주 작가가 새 장편소설 ‘재이’로 돌아왔다. 이번 작품은 ‘사하맨션’ 이후 7년 만의 장편소설이다. 신작에는 서울의 한 달동네에서 43층 한강뷰 아파트로 ‘계급 횡단’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소설의 주인공 ‘재이’는 입체적이다 못해 파편적이고, 심지어 분열증적인 인물이다. 동창들에게는 ‘손절의 아이콘’으로 불리고, 직장 동료에게는 상식이 모자란 사람, 부모에게는 혼자 잘 먹고 잘사는 야한 딸, 남편에게는 상의도 없이 덜컥 집 계약서를 쓰는 대담한 여자다. 재이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사회에서 만난 동료들과 사고나 행동 체계가 달랐고, 동시에 내 가족은 내가 쓰는 어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은 가난과 복지에 대해 말하는 부자가 되었다. 때로는 소외감을 느끼고 때로는 죄책감을 느꼈다.”(56쪽)
재이에게 달동네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결코 아름다운 추억이 아니다. 아래가 뻥 뚫린 재래식 화장실, 골목 가장자리에 방치된 죽은 쥐 등 “대체로 불편하고 더럽고 피로한 공간”이었다. 그런 재이의 삶에 인생의 첫 조력자인 중학교 선생님이 나타난다. 선생님은 재이를 한 은행의 장학재단에 장학생으로 추천하고, 재이는 장학재단의 지원을 받아 명문대에 입학한다. 이후 재이는 장학금을 지원해 주던 은행에 입사하고,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코인과 부동산 재테크에 성공하며, 자신의 가난을 팔아 책을 내면서 조금씩 지위가 상승한다.
하지만 체화된 가난과 체득한 부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비난하고 자책한다. “나는 충분히 가난하고 불행했고, 또 그렇게까지 가난하거나 불행하지는 않았다. 그 사이에서 답답하고 불안했던 것 같다. 느린 속도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한없이 거꾸로 걸어올라가는 기분이랄까.”(53쪽)
소설은 한 여자가 써 내려간 ‘부와 가난의 포트폴리오’다. “나는 내 삶 속에서 세상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깨달았고, 내가 이해하고 감당할 수 있는 사고의 영역 안에서, 실행하고 책임질 수 있는 역량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왔다.”(218쪽) 그렇기에 그는 “부끄러움도 진심이고, 부끄러움이 부끄러운 것도 진심”이라며 “이 모든 복잡한 마음들이 뒤엉켜 서로를 침범하거나 훼손하지 않도록,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라고 자문한다.
조 작가는 2011년 장편소설 ‘귀를 기울이면’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후 소설집 ‘그녀 이름은’ ‘우리가 쓴 것’ ‘서영동 이야기’와 장편소설 ‘고마네치를 위하여’ ‘82년생 김지영’ ‘사하맨션’, 청소년 소설 ‘귤의 맛’ ‘네가 되어 줄게’ 등을 썼다.
문학동네, 232쪽.
